•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Ⅵ.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4) 신라의 의생활

4) 신라의 의생활

 신라는 중국 史書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고구려·백제의 복식과 같다고 하였다. 다만 “冠을 遺子禮라고 하고, 襦를 尉解, 袴를 柯半이라 하고, 靴를 洗라고 하였다”750)≪梁書≫권 54, 列傳 48, 夷傳, 新羅
≪南史≫권 79, 列傳 69, 東夷, 新羅.
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신라음을 중국음으로 옮긴 것으로 유자례롤 보면 고깔, 위해는 우티, 가반은 고이, 세는 신으로 추정되어 오늘의 복식용어가 신라에서 나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신라도 의복에 素, 즉 백색을 숭상한다고 하였고, 머리모양은 여자는 辮髮하여 동이고(繞頭), 남자는 黑巾을 썼다고 하였다. 신라의 官制에는 17등급의 官階에 의해 복색을 정하였는데 그 내용은<표 3>과 같다.

官階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公服 紫 衣 緋 衣 靑 衣 黃 衣

<표 3>신라의 公服制度

 여기서 紫·緋·靑·黃의 4색 옷은 公服이었고 평인은 백색이나 흑색의 옷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중국의 제도를 본뜬 冠은≪唐書≫에 보이는 흑건, 즉 幞頭였다고 추측된다. 이와 같이 중국 공복의 빛깔을 모방하였다 하더라도 그 복식제도는 우리 고유의 제도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천마총 기마인물의 저고리에서는 선이 보이지 않으며 金庾信墓 12支護石像은 저고리의 袖口가 매우 넓다.<梁職貢圖>에 보이는 신라 사신은 소매가 좁고 오른쪽으로 여며지는 저고리에 넓은 바지를 입었다. 바지 부리에는 넓은 다른 색의 선이 둘러져 있는데 고구려·백제의 사신과 같은 服裝이며 冠만 다르다.

 이상에서 보면 신라의 상류층 남자는 소매가 좁은 저고리와 넓은 바지를 입고, 서민 남자는 소매가 좁은 저고리와 좁은 바지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민 여자는 소매가 좁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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