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9권 통일신라
  • Ⅴ. 문화
  • 2. 불교철학의 확립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4) 지장신앙

(4) 지장신앙

 지장보살은 석가가 입멸하고 나서 미륵이 출현하기까지의 無佛세계 곧 五濁惡世의 末法시대에 석가의 부촉을 받아 六道에 몸을 나타내어 하늘에서 지옥에 이르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悲願의 보살이다. 지장신앙은 특히 지옥까지 구제한다는 점에서, 亡者 구제신앙으로 폭넓은 기반을 이룰 수 있었다. 지장신앙의 근본 경전은≪大乘大集地藏十輪經≫·≪地藏菩薩本願經≫·≪占察善惡業報經≫등이다.

 신라의 지장신앙은 眞表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진표는 순제에게 출가하여 스승의 말에 따라 得戒를 원하여 명산을 편력한 뒤 仙溪山 不思議庵에서 삼업을 닦고 亡身懺의 수행에 의해 효성왕 4년(740)에 지장보살의 淨戒를 받았다. 다시 정진하여 미륵으로부터≪점찰경≫과 證果簡子 189개를 받았다(정계와 간자를 받은 것이 경덕왕 19년(760)이라고도 함). 진표는 이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점찰법에 미륵지장신앙을 강조하여 새로운 점찰법을 수립하였는데 이 점찰계법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유가계의 유식사상이었다.1122)金南允, 앞의 글(1984), 139쪽.

 진표는 이를 바탕으로 金山寺에서 교화를 펴서 점찰법과 참회행의 실천을 바탕으로 태현과는 다른 법상종의 한 계열을 이루었다. 금산사에 이어서 속리산과 아슬라주에서 戒法을 설하고 금강산에 鉢淵寺를 세워 점찰법회를 열었는데, 이러한 진표의 활동은 경덕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후원을 얻을 수 있었다. 진표의 활동은 제자 永深의 속리산 길상사로 이어지고 다시 헌덕왕자인 心地에게 전해져 동화사에 펼쳐지더니 신라말에는 釋忠에 의하여 왕건에게 연결되었다.

 진표가 선도한 지장신앙은 점찰계법에 의한 지계의 실천행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신앙이었는데, 경주에서 떨어진 지방 일대의 일반 서민들에게 깊숙히 전파되어 중대 신앙의 왕성한 한 면모를 이루었다. 그래서 성덕왕대 이후에 설립된 五臺山 신앙에서는 오대 중 南臺에 地藏房을 설치하여 낮에는≪地藏經≫과≪금강반야경≫을 독송하고 밤에는 占察禮懺을 실천하여 金剛社를 운영하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라사회에서 행해진 점찰법회에 대한 기록으로는 圓光과 智惠에 관한 것이 있다. 원광은 歸戒滅懺의 법으로 우매한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이 머물던 嘉栖寺에 占察寶를 설치하고 恒規로 삼았다. 安興寺의 지혜는 仙桃山 神母의 시주와 권유로 매년 봄가을로 善男善女를 모아 널리 一切의 含靈을 위해 占察法會를 두는 것을 항규로 삼았다.

 원효와 교유하였던 蛇福 母子를 위해 창건된 道場寺에서는 매년 점찰법회가 행하여졌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은 신문왕 때에 開士인 漸開가 興輪寺에 六輪會를 설치하려 하자 토지를 시주하였고 이 공덕으로 재상의 집안에 환생하였다. 육륜회는 점찰의 세 가지 내용 즉 十輪·三輪·六輪 중 삼세의 과보를 점치는 六輪相法을 실천하는 모임이었다.1123)金煐泰,<占察法會와 眞表의 敎法思想>(≪崇山朴吉眞博士華甲紀念 韓國佛敎思想史≫, 1975; 앞의 책, 1987, 388∼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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