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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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9권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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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에 이 땅의 천문학 수준은 이미 상당히 높은 경지를 향하고 있었다. 통일 직전인 선덕왕 2년(633)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瞻星臺는 그런 신라 천문학 수준을 대변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첨성대가 실제로 매일 밤 천문을 관측하던 실용적 건조물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첨성대가 신라 천문학과 연관된 것만은 분명하고, 그 이름만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천문관측과 관련된 것도 사실이다.1140)송상용,<첨성대>(≪이야기 한국과학사≫, 서울신문사, 1984), 72∼78쪽. 첨성대가 그 주변에 건조되어 사용되었던 천문 관련 시설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라는 그 수도 경주에 천문관측소를 만들어 여러 기구 등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 상징 건물은 첨성대였고, 그 중심으로 여러 가지 건물과 시설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이미 상당히 천문학이 발달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관측 기록으로 지금까지≪三國史記≫·≪三國遺事≫를 통해서 전해지는 기록들만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들 기록에 대해서는 이미 그 상세한 내용이 밝혀져 있다.1141)申瀅植,≪三國史記硏究≫(一潮閣, 1981), 184∼209쪽.
Park, Seong-Rae, Portentography in Korea·Portents in Korean History, Journal of the Social Sciences & Humanities, Seoul, 46·47, 1977·1978.
삼국 시기를 통해 67회의 일식이 기록되어 남았는데, 그 가운데 통일신라 시기의 것은 모두 11회뿐이다. 그 밖에도 천문기록으로는 혜성, 다섯 행성의 움직임, 유성 등의 기록이 주목할 만하다. 혜성의 경우 통일 이전의 신라에는 8회 기록이 있으나, 통일 이후에는 5회 기록이 남아 있다. 통일된 이후에 특히 많아진 특징을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행성이 달을 범한 기록(五緯犯月)은 통일 전의 3건에 비해 통일 후에는 14건이나 기록되어 있다. 또 유성의 경우는 통일 이전의 신라에서 모두 7건의 기록이 있으나, 퉁일 이후의 기록은 23회나 된다.

 물론 통일 이후의 신라기록이 많아진 것은 비단 천문기록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모든 기록이 더 상세하게 된 것은 퉁일 이후 신라는 더 많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기 때문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하늘이란 지금과 똑같은 의미로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지금 우리들은 땅의 현상이라 여길 많은 자연현상을 당시 사람들은 하늘(天)의 노하고 기뻐함에서 비롯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진도 하늘의 뜻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던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보기 따라서는 地震도 天變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천변의 기록은 반드시 자연현상의 충실한 반영이라기보다는 그 정치적 의미 때문에 더 주목받고 또 기록되어 남은 것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전혀 일어나지 않은 천문현상을 허위날조하여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여기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향가로 남아 전해지고 있는 彗星歌는 흥미있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삼국유사≫에 의하면 眞平王(579∼631) 때 融天師가 혜성가를 지어 혜성도 사라지게 하고, 왜군을 물리쳤다는 내용이다.1142)≪三國遺事≫권 5, 感通 7, 融天師 彗星歌. 세 화랑이 금강산 구경을 떠나려 하는데 혜성이 나타나 28수 가운데 心 별자리의 큰 별을 침범했다. 세 화랑이 이상히 여겨 유람을 취소하거늘 융천사가 혜성가를 지어 불렀더니 혜성은 사라지고 마침 침입해 들어 왔던 왜군도 물러갔다는 설화이다. 그런데≪삼국사기≫·≪삼국유사≫어느 곳에도 진평왕 재위중에 혜성이 나타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통일 직전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통일 시기에 신라사람들이 갖고 있던 천문사상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혜성이란 재앙을 불러오는 조짐이라 여겼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 융천사라는 샤만이 동원되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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