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9권 통일신라
  • Ⅴ. 문화
  • 5. 예술
  • 4) 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가. 토기

 이 시기에 있어서의 토기는 古新羅 土器의 胎土나 燒成방법이 같으나 器形과 文樣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토기의 器臺나 異形土器 등이 없어지며 또한 高杯·長頸壺 등의 받침이 짧아지는 형태로 변하고 있고 뚜껑 꼭지에 있어서도 보주형의 꼭지가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한편 廣口短頸壺·平底長頸甁 등이 나타나며 문양에 있어서도 종래의 기하학적 요소가 담긴 문양에서 각가지 화려하고 규칙적인 印花文의 문양을 器面 전체에 덮게끔 하는 施文방법이 나온다.

 특히 통일신라시대는 불교의 융성으로 火葬制가 발달함에 따라 器種에 있어서도 火葬納骨用 骨壺가 많은 것이 특징인 동시 唐과의 접촉에서 전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로소 기종의 기면에 鉛釉系의 黃褐·黃綠色 釉藥을 施釉한 토기와 灰釉系 綠釉土器가 출현하여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기점을 제시해 주어1270)≪美術資料≫22(국립중앙박물관, 1978)의 휘보란에 慶北 慶州郡 見谷面 金丈3묘에서 발견된 灰釉系 綠釉토기 가마 자리가 발견되었으며, 長石釉를 쓴 고려청자에 앞서 灰釉新羅靑磁가 신라 말기에 있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第1回 東垣기념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보면 정양모,<羅末麗初 靑磁 및 白磁硏究의 諸問題>에서 日暉文을 토대로 고려청자 발생설을 9C 후반으로 보고 있고, 최건,<統一新羅時代硬質陶器의 傳統계승과 中國陶磁文化의 受容에 관하여-특히 한국청자 발생시기를 중심으로->에서는 9C 전반으로 잡고 있다. 반면에 윤용이,<초기 청자요지의 분포자흑색>에서는 10C 후반으로 보고 있다.
안압지 출토 토기편들에서 보이는 綠釉系 器片과 初期 靑磁片 등에 관한 문제점도 제시되었다.
토기의 실연대를 대체로 전기·후기로도 구분할 수 있다.

 전기의 토기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얕은 굽으로 된 고배나 장경호와 긴목을 갖춘 꽃병 같은 것과 문양에 있어서도 三角文과 點圓列文·인화문 등이 주로 성행되고 전기말에 이르러서는 貼花文·인화문·花繩文·구름문 등도 나타난다.

 후기의 토기에 있어서는 울릉도 천부동 2·3호분 출토 토기 등이 대표적이며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연유와 회유를 사용한 두 종류의 시유토기가 출현하며 骨壺·胎壺 등 특수한 목적에 사용된 토기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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