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10권 발해
  • Ⅱ. 발해의 변천
  • 1. 발해의 융성
  • 3) 발해국의 위상

3) 발해국의 위상

 발해는 기본적으로 당나라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던 왕조였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되듯이 발해가 독립국이 아니고 단순히 당나라의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하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발해인들이 당나라 賓貢科에 급제하였던 사실은 이들이 당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취급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발해는 대외적으로 당나라의 藩國에 속하였고 내부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왕국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지만, 일부에서 皇帝國의 면모를 유지하였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미 발해 초기부터 나타났다. 武王 때에 仁安이란 연호를 사용한 이래로 거의 전 기간에 걸쳐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하였는데,126)≪新唐書≫권 219, 列傳 144, 北狄 渤海.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연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에 이러한 사실은 대외적으로 자주성과 독립성을 표방하고 내부적으로 왕권의 절대성을 추구하였던 점과 연관되어 있다.

 문왕 시기에 만들어진 貞惠公主묘지(780)와 貞孝公主묘지에는 두 공주의 아버지인 문왕을 大王, 聖人 등으로 부르면서 ‘皇上’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127)宋基豪,<발해 文王代의 개혁과 사회변동>(≪韓國古代史硏究≫6, 1993), 59∼61쪽. 황상이란 말은 신하가 황제를 부를 때에 사용했던 것이므로, 발해에서 황제 칭호가 일부 사용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天孫임을 자처하고 일본에 대해서 舅甥關係를 요구하였던 점도 역시 주목된다.128)≪續日本紀≫권 32, 光仁天皇 寶龜 3년 2월 기묘.
宋基豪, 위의 글, 57∼59쪽.

 무왕과 문왕 때의 이러한 自尊意識은 9세기에 들어서도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일본 大原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는 발해 碑像은 咸和 4년(834)에 조성된 것인데, 그 명문에 許王府가 보인다. 趙文休가 허왕부에서 參軍·騎都尉를 역임한 것이다. 다른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관청과 관직은 발해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허왕부는 許王으로 봉해진 인물이 존재해야만 하고, 그렇다면 이를 임명하였던 인물은 허왕보다 한 차원 높은 황제의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발해는 당나라 황제의 지배체제인 3省 6部의 제도를 거의 그대로 모방하였다. 그리고 3성 가운데에 宣詔省이 있고, 中臺省 아래에는 詔誥舍人이란 관직이 있는데, 이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詔라는 것은 원래 황제의 명령을 가리키고, 敎는 왕의 명령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발해 왕의 명령을 황제의 명령과 같은 조로 부르기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신라에 宣敎省이 설치되어 있던 점과 대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해는 내부적으로 황제국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황제를 칭하기 위해서는 그의 교화가 직접적으로 미치는 藩國의 상정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발해는 주변의 靺鞨族을 번국으로 상정하였다. 무왕이 727년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이 주변의 “列國을 주관하고 여러 번국을 아울렀다”129)≪續日本紀≫권 10, 聖武天皇 神龜 5년 정월 갑인.고 함으로써 이 때에 번국을 상정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貞元 14년(79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茹富仇의 관직이 虞侯婁蕃長都督이었던 사실130)≪冊府元龜≫권 976, 外臣部, 褒異 3, 德宗 貞元 14년 11월 무신.은 발해가 동북쪽에 있던 虞婁部를 번국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역시 정원 8년에 사신으로 갔던 楊吉福이 押靺鞨使였던 사실131)≪唐會要≫권 96, 渤海.도 말갈족에 대한 발해의 우월한 지위를 나타내고 있다. 사실 지방관과 백성 사이에서 발해의 지방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던 반독립적인 지배자들을 首領이라 부른 것도 이들을 藩長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이상의 사실로 보건대 발해는 대외적으로 당나라의 번국에 속하였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황제국의 질서도 일부 갖추고 있었던 二重的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체제는 高麗에 이르러 더욱 다듬어진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宋基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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