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10권 발해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3. 예술
  • 2) 미술
  • (1) 회화

(1) 회화

 발해의 繪畵에 대해서는 元나라 때에 편찬된≪圖繪寶鑑≫에 大簡之가 松石과 小景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대간지를 渤海人이라 하면서도 金나라 항목에 넣은 점으로 보아 그는 금나라 때에 활동한 발해유민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해시대의 회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림으로는 정효공주무덤과 삼릉둔 2호묘의 벽화가 대표적이다. 정효공주무덤에는 연도와 현실의 3면의 벽에 모두 12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450)정효공주무덤 벽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이 참조된다.
延邊朝鮮族自治州博物館, 앞의 글.
池升元,<淺談渤海貞孝公主墓壁畵>(≪延邊文物資料滙編≫, 1983).
李殿福,<唐代渤海貞孝公主墓壁畵與高句麗壁畵比較硏究>(≪黑龍江文物叢刊≫1983­2).
방학봉,<정효공주무덤의 벽화에 대하여>(≪발해문화연구≫, 이론과실천, 1991).
비록 공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 그려진 武士·侍衛·內侍·樂師(樂伎)·侍從을 통하여 공주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현실의 棺臺 남쪽 측면에도 백회 위에 그린 사자머리 같은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손상이 심하여 원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정효공주무덤에 그려진 벽화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도에는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면서 문을 지키고 서 있는 무사 2명이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키는 98cm로서, 칼을 잡고 철퇴를 메고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있다.

 현실의 동쪽과 서쪽 벽에는 키가 113cm∼117cm되는 인물들이 각각 4명씩 그려져 있다. 서쪽 벽에는 시위 1명을 앞세우고 악사 3명이 문 쪽을 향하여 뒤를 따르고 있다. 시위는 상투를 높이 틀고 붉은색 抹額(帕首)을 썼으며, 깃이 둥글고 소매가 좁고 옷자락이 긴 갈색 團領袍를 입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허리에는 劍과 활을 차고 어깨에는 철퇴를 메고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악사들은 모두 幞頭를 썼고 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고 옷자락이 긴 단령포를 입고 있다. 단령포의 색깔은 앞에서부터 붉은색, 짙푸른색, 흰색으로 서로 다르다.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었고 악기를 싼 보자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발에는 미투리(麻鞋)를 신었다.

 동쪽 벽에도 역시 시위 한 명을 앞세우고 공주를 시중들던 3명의 내시가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인물이 시위로서 서쪽 벽과 모습이 거의 같다. 그 뒤에 보이는 3명의 내시도 악사들처럼 복두를 쓰고 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고 옷자락이 긴 단령포를 입고 있다. 단령포는 악사들처럼 앞에서부터 붉은색, 짙푸른색, 흰색이다.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발에는 미투리를 신었다. 두 손으로 물건을 잡고 역시 문 쪽을 향해 서 있다.

 북쪽 벽에는 키가 117cm되는 侍從 두 사람이 얼굴을 서로 마주보면서도 약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복두를 쓰고, 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고 옷자락이 긴 단령포를 입고 있으며, 검은색 가죽띠를 띠고 미투리를 신고 있다. 둘 다 등 뒤로 활을 메고 있다. 서쪽 인물은 흰색의 단령포를 입고 두 손에 雙頭의 지팡이를 잡고 있으며, 동쪽 인물은 紫色 단령포를 입고 두 손으로는 日傘같은 것을 들고 있다. 왼쪽 허리에 찬 화살통(箭囊) 중간에는 머리를 뒤로 돌리고 앞다리를 들면서 도망하는 황토색 사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어서 하나의 독립된 그림을 이루고 있다.

 벽화를 그리는 방법으로 밑그림을 붙이고 그 위에 침으로 찔러가면서 윤곽선을 만드는 針刺法보다는 鐵線描를 택하였던 듯하다.451)엄장록,<정효공주무덤의 몇 개 특점에 대한 탐구>(≪발해사연구≫3, 연변대학출판사, 1992), 164∼166쪽.
鄭永振, 앞의 글(1994), 376∼377쪽.
현실의 벽 위에 백회를 바르고 다시 석회물을 칠한 다음에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먼저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나서 다홍색(紅)·붉은색(朱)·적갈색(赭)·푸른색·검은색·녹색·흰색 등으로 바탕색을 칠하고, 다시 먹으로 그림을 완성하였고 마지막으로 옷에 문양을 그려 넣었다.

 인물 표현을 보면 하얗게 칠한 얼굴은 둥글고 크며 살이 쪄서 풍만하다. 눈은 작고 눈썹은 가늘며 코가 낮고 뺨은 둥글며 붉은 입술은 작고 동그랗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인물 표현은 대체로 당나라 풍격을 지니고 있다.452)당나라 벽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이 참고가 된다.
賀梓城,<唐墓壁畵>(≪文物≫1959­8).
宿白,<西安地區唐墓壁畵的布局和內容>(≪考古學報≫1982­2).
秦浩,≪隋唐考古≫(南京大學出版社, 1992), 196∼201쪽.
그리고 이들이 비록 남자옷을 입고는 있지만 여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주를 시중들던 남장한 여성들로 여겨진다. 이러한 예는 당나라 벽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453)宿白, 위의 글, 150∼153쪽의 附表 참조.

 이 벽화는 발해인의 服飾도 엿볼 수 있다.454)김민지·이순원,<발해의 복식에 관한 연구(I)-정효공주묘 벽화를 중심으로->(≪生活科學硏究≫18, 서울大 家政大, 1993). 머리는 높은 상투를 틀고 복두나 抹額·투구를 썼고, 몸에는 단령포나 갑옷을 입었다. 단령포는 깃이 밭아서 목둘레선에서는 속옷이 보이지 않으나, 허리 아래에서 옆으로 트인 옆트임을 통하여 속에 입은 中單·內衣·袴가 드러난다. 소매에는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고, 옷자락이 발등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겉옷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겉옷의 색깔에는 갈색·붉은색·짙푸른색·흰색·자색 등이 있는데, 동일한 직분인데에도 옷 색깔이 각기 다른 점으로 보아서 관복 규정에 따른 것은 아닌 듯하다.455)≪新唐書≫渤海傳에는 관복 색깔이 3품 이상은 紫色, 4·5품은 緋色, 6·7품은 옅은 緋色, 8품은 綠色으로 규정되어 있다. 다음으로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었고 신발은 검은 가죽신이나 미투리를 신었다.

 삼릉둔 2호묘의 현실과 연도의 벽 및 천정에도 백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다.456)鄭永振, 앞의 글(1994), 373∼374쪽. 이 무덤에는 정효공주무덤 벽화와 비교가 되는 인물과 함께 꽃그림이 그려져 있다. 인물 그림은 현실 동·서벽에 각각 4명, 북벽에 3명, 남쪽 연도 입구 좌우에 각각 1명, 연도 동·서벽에 각각 무사 1명씩 도합 15명이 그려져 있지만, 그림의 보존상태는 아주 나쁘다. 여기에 그려진 인물들도 역시 얼굴이 풍만한 여성들이라고 한다.

 현실 천정에는 꽃그림이 있다. 삼각으로 고임한 천정에는 흰색 바탕에 노란색 꽃이 가득 그려져 있다. 천정 한가운데에는 6개의 꽃잎이 3겹으로 된 큰 꽃을 그리고, 그 둘레를 6개의 꽃잎이 2겹으로 된 여섯 송이의 꽃으로 싸서 아주 커다란 꽃뭉치를 이루고 있다. 고임돌의 아래쪽과 옆에도 각기 다른 꽃무늬로 꽃이 그려져 있다. 현실 천정의 꽃그림들은 二方連續團花圖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도 천정에도 동일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꽃으로만 채워진 그림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한편 돈화 육정산 6호분(IM6)에서 검은 선과 주홍색·청회색·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화조각이 발견되었고,457)王承禮, 앞의 글, 206쪽. 화룡 하남둔고분 부근에서도 꽃그림이 있는 벽화 파편이 발견되었으나,458)郭文魁, 앞의 글. 워낙 작아서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상경성에서 조사된 절터들에서도 꽃이나 千佛圖가 그려진 아주 작은 벽화 파편들이 발견되었고,459)東亞考古學會, 앞의 책, 76쪽. 아브리코스절터에서도 번개무늬와 직물무늬가 복합된 벽화 파편이 발견되었다.460)E.V. Shavkunov 著·宋基豪 譯, 앞의 글(1985), 450쪽. 또 상경성에서 출토된 벼루 위에 복두를 쓴 인물의 얼굴이 좌우로 납작하게 그려진 예도 있다.461)조중공동고고학발굴대, 앞의 책, 211쪽.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조선유적유물도감≫8 발해편(평양 ; 외국문종합출판사, 1991), 275쪽.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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