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Ⅲ. 후삼국의 정립
  • 2. 후백제
  • 2) 후백제의 발전과 호족연합
  • (2) 호족과의 연합

(2) 호족과의 연합

 견훤은 무력적인 정복 못지않게 지방 호족세력과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견훤과 호족세력들과의 결합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하나가 호족과의 婚姻政策이었다.

 견훤이 혼인정책을 통해 호족과 결합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삼국유사≫ 견훤전에 인용된≪古記≫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고기≫에는 광주 北村의 富人女와 紫衣男이 혼인했다고 하는 소위 ‘蚯蚓交婚說話’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견훤이 광주의 호족과 정략적으로 혼인한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82)이 혼인설화에 대한 자세한 논급은 申虎澈, 앞의 책, 89∼91쪽 참조. 견훤이 서남해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광주에 들어온 지 불과 한달 만에 5천여 명의 무리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광주호족과의 혼인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견훤이 혼인정책을 통하여 호족세력과 결합했을 것이라는 두번째 근거로는 견훤의 사위가 모두 대호족세력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견훤의 사위로는 昇州의 장군인 朴英規와 武州의 성주인 池萱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승주와 무주의 호족세력이었다. 견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식들도 호족세력과 혼인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견훤의 혼인정책은 왕건의 혼인정책과도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끝으로 견훤의 혼인정책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견훤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있었고 자식도 십여 명이 있었다고 한≪삼국사기≫ 견훤전의 기록을 들 수 있다.183)≪三國史記≫ 견훤전에는 神劍·良劍·龍劍 및 金剛의 4형제를 제외하고는 견훤의 아들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이 견훤전 이외의 다른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견훤의 자녀 이름이 18명이나 확인된다. 견훤이 여러 명의 부인(왕비)을 두고 있었고 그들 사이의 소생이 많이 있었던 것은 혼인을 통한 호족연합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견훤은 자신의 지배적 권위와 지방세력의 확보를 위하여 호족들과의 연계가 절실히 필요하였고, 그러한 수단으로 유력한 호족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거나 아들을 사위로 맞이하는 혼인정책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견훤이 호족세력들과 결합해 가는 양상으로 혼인정책 외에「歸附」의 형식을 통한 호족연합을 들 수 있다. 귀부호족의 문제는 후삼국기에 있어서 호족연합정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귀부호족과 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논증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이를 간단히 정리하는데 그치고자 한다.184)귀부호족에 대해서는 申虎澈,<新羅末·高麗初 歸附豪族의 政治的 性格>(≪忠北史學≫8, 1995) 참조. 우선 지방의 호족들이 국왕들에게 귀부한 것은 후삼국기에 한정되었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합하고 난 후에는 귀부라는 형태를 가진 국왕과 호족들간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았다. 아울러 호족들의 귀부가 ‘지방세력의 견제책으로 국왕의 필요에 의하여 호족에게 강요된 사태’라기 보다는 호족들이 스스로 귀부의 대상을 선택·결정하였다. 때로는 호족이 귀부의 대상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으며 중복된 귀부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국왕과 귀부호족과의 관계를 단순히「군신적 상하관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호족이 귀부를 통해 군신관계를 맺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는 상호의존적이고「호혜적인 관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끝으로 후백제는 군사를 동원하여 호족세력을 정복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는 호족과의 연합이라기 보다는 통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로 고려나 신라와의 접경지역에 해당되었다. 이들 정복지역의 호족이 귀부호족의 경우와 다른 점은 호혜적인 협조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상하관계라고 하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견훤은 호족세력들과 혼인이나 귀부 혹은 정복 등의 방법을 통해 연합하였으며, 그러한 점에서 후백제의 성립은 호족연합정책의 결과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185)호족연합정책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申虎澈,<後三國時代 豪族聯合政治>(≪韓國史上의 政治形態≫, 一潮閣, 199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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