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4) 중추원
  • (3) 승선의 기능

(3) 승선의 기능

 ≪高麗史≫백관지에는 중추원의 기능으로서 출납·숙위·군기의 일을 관장하였다고 하였는데 여기 나오는 왕명의 출납이 바로 승선의 직능에 해당된다. 승선은 중추원 本司에서 시무하는 추신과는 별도로 承宣房에서 왕명을 출납하는 일을 맡고 있어 독립된 기관과 같이 존재하였다.0080)承宣房이란 이름은 고려 초기에는 보이지 않고 후기에 보인다.≪牧隱詩藁≫권 29에 ‘承宣房 口傳’이라 하였고,≪太宗實錄≫권 2, 태종 원년 7월에 ‘承宣房 爲代言司’라 하여 고려 말에 承宣房이 代言司로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는 따로≪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諸司都監各色에는 ‘承宣房’이라 하였고,≪高麗史≫권 129, 列傳 42, 叛逆 3 崔忠獻傳에는 ‘知奏事房’이 보인다. 이 승선방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承政院이라는 독립관서를 이룰 요소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하겠다.

 승선의 기능에 대하여는 恭愍王 20년(1371) 7월의 羅州牧使 李進修의 상소에 잘 나타나 있다.

國制에 知申事 1인, 承宣 4인은 官位가 모두 3품에 불과하나 날을 교대로 입직하여 報平廳에서 예를 집행하고 왕명을 출납하되 한 마디 말이라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이를 龍喉 또는 內相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高麗史≫권 43, 世家 43, 공민왕 20년 7월).

 이것은 승선의 기능이 ① 更日 入直 ② 報平廳(聽政하는 곳)에서의 執禮 ③ 왕명의 출납 등 세 가지였다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왕명 출납이었기 때문에 승선은 龍喉 또는 內相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承制라고도 칭하였음). 여기 나타나는 바와 같이 승선은 3품관의 낮은 관질이며 그 직책도 단순히 왕의 喉舌 곧 왕명을 출납하는데 그쳐 한 마디라도 자의로 말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龍喉」였다. 그는 국사의 의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만 재추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함께 아뢰어 재가를 받는 비서역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승선은 국왕 측근직이라는 유리한 지위로 인하여 커다란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內相」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되었다.

 실제로 승선은 단순한 왕명 출납에 그치지 않고 국왕의 고문역할도 담당하였다. 明宗朝의 승선이었던 柳公權은 왕의 고문과 獻替에 보필한 바 컸다고 한다.0081)<柳公權墓誌>(≪朝鮮金石總覽≫上, 朝鮮總督府, 1919). 이러한 고문과 헌체는 국왕을 보좌하여 국사에 관여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국왕 측근의 비서직이니 만큼 국가의 대소사에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의 권한을 크게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최씨정권을 넘어뜨리고 집권한 승선 柳璥의 실권을 빼앗기 위하여 국왕이 그의 승선을 파하고 簽書樞密院事에 임명하였다는 사실은, 첨서추밀원사가 엄연히 추신으로 승선보다 상위직이지만 실권은 승선만 못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승선의 직능이 중대하고 실권이 컸기 때문에 누구나 승선에 임명되는 것을 바랐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자격이 갖춰져야 했다. 우선 승선은 왕명을 출납하였기 때문에 교양을 갖춘 儒者가 아니면 안되었고, 또한 거동과 언어, 기무 등이 뛰어나야 했다. 지주사에 임명된 李詹이 일찍이 승선의 조건을 지적한 바 있는데, 첫째 擧止가 민첩해야 하고, 둘째 언어가 精詳하며, 셋째 기무를 强記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승선이 되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대개 과거에 합격하고 가문이 좋은 유능한 사람이 임명되었으며 이 직에 오르면 그 후 요직에 승진하는데 유리하였다.

 승선 외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 樞密院執奏가 있다. 이 執奏는 무신란 후에 승선의 자격이 못되는 권신들이 임시적으로 임명된 왕명 출납의 관직이었으나 崔忠粹가 죽은 후 폐지되었다. 같은 국왕 측근의 출납직으로 무신란 전까지 內侍로서 임명된 임시적인 掌奏事가 있었는데 이는 중추원과 무관하였으나 집주는 엄연한 추밀원 소속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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