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5) 삼사
  • (2) 삼사의 기구 조직

(2) 삼사의 기구 조직

 고려의 삼사가 송제를 채용하였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당나라 말기에는 같은 재정기구로서 鹽鐵使·判度支·判戶部의 3사가 각각 독립하여 있다가 송에 이르러서는 이들 삼사가 단일화되어 하나의 방대한 재정 총괄기관이 되었으므로, 하나의 단일기구란 점에서 고려의 삼사는 송제를 본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려의 삼사를 검토해 보면 송제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첫째가 기구 조직면의 차이점이다.

 고려 삼사의 기구가 어떻게 편성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高麗史≫백관지의 관원구성이 있으므로 이를 통하여 살펴 볼 수밖에 없다. 이제 백관지에 나타난 삼사의 관원 구성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判 事 1 宰臣이 兼
 使  2 正3品
知司事 1 從4品
副 使 2 從4品
判 官 4 (從5品)
吏 屬 52 (主事 6, 令史 11, 書令史 2, 記官 25, 重監 2, 計史 2, 算士 4)

<표 10>三司의 官員構成

 이 표를 보면 品官이 10인(겸관 포함)이고 이속이 52인이다. 품관의 수가 의외로 적은 것은 삼사의 기구 조직이 송제에 비하여 보잘 것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속이 많은 것은 회계사무의 실무기관의 기능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관원 구성을 보면 고려의 삼사가 송과 같이 鹽鐵·度支·戶部의 3부분으로 구성된 것같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송의 삼사는 비록 단일기관이지만 앞의 세 기능을 분담하는 삼원적 구조였는데, 고려의 삼사는 1인의 判三司事(재신이 겸)에 三司使 2인, 割副 2인, 判官 4인으로 구성되었고, 또 회계를 담당한 이속도 重監 2인, 計史 2인, 算士 4인으로 복수로 구성되어 송의 삼사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송제와 같이 삼사가 3부제였다면 각 부를 관장한 부사부터 3명이고 그 밑의 관원도 삼부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고려의 삼사는 송제를 채용하였지만 염철·탁지·호부의 3부제는 아니었다고 하겠다. 또한 고려의 삼사는 송제와 같은 도합 20개나 되는 諸案이나 여러 子司 등 방대한 하부기구도 딸려 있지 않은 단순한 단일기구에 불과하였다.

 그러면 고려가 송제의 삼사를 채용하면서도 기구 조직상 현격한 거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에서는 3성·6부·9시의 정부기구가 있었으나 형식화되고 실제로는 정무를 총괄한 中書門下와 군무를 관장한 樞密院, 그리고 재무를 관장한 三司의 세 기관이 실질적으로 국무를 분담하였다. 따라서 송의 삼사는 최고의 일원적인 재정기관이었으며, 이에 戶部·工部·將作監 등의 공식기구는 이름만 있을 뿐 직사는 삼사에 빼앗겨 허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성종대에 3성·6부·諸寺의 정부기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일단 재정 사무는 호부에서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삼사의 기능은 약화되고 기구편성도 단순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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