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5) 삼사
  • (3) 삼사의 기능

(3) 삼사의 기능

 고려의 삼사의 기능에 대하여≪高麗史≫백관지에는 모든 중외 전곡의 출납 회계의 사무를 관장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삼사가 전국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관장하여 고려의 일원적인 재무기관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고려의 삼사는 천하의 財計를 관장한 송 삼사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실제로 고려의 삼사가 관장한 기능은 송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고려의 삼사가 실행한 직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租稅와 貢賦에 관한 사무였다.≪高麗史≫식화지 조세조에는 삼사가 조세의 수납과 감면 등에 관한 사무,0092)≪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租稅 문종 7년 6월 참조. 또 歲貢을 관장하였음을 보여준다.0093)≪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租稅 정종 7년 정월. 즉 삼사는 전곡 수입의 주요 세원인 조세와 공부의 일을 맡았던 것이다.

 또한 삼사는 전곡의 지출도 관장하였는데, 그 중요한 것은 녹봉과 賜穀이었다.≪高麗史節要≫예종 2년(1107) 4월조에는 실제로 삼사에서 녹봉을 급여한 사례가 보인다.0094)≪高麗史節要≫권 7, 예종 2년 4월. 給祿 자체는 左倉(뒤의 廣興倉)에서 담당하고 삼사는 祿牌만을 급여하는 사무를 보았을 따름이지만 녹봉의 주무관청은 어디까지나 삼사였던 것이다. 또한 삼사는 졸거한 중신에 대해 賜穀을 하고0095)≪高麗史節要≫권 5, 문종 20년 2월. 多産한 백성에게도 역시 사곡을 하였으며,0096)≪高麗史≫권 12, 世家 12, 예종 3년 8월. 또 기근 때 농민들에게 곡식을 주어 진휼하기도 하였다.0097)≪高麗史≫권 80, 志 34, 食貨 3, 賑恤 水旱疫癘賑貸之制 현종 7년 9월.

 이상 삼사가 실제로 집행한 기능을 보면 조세수취·조세감면·세공, 그리고 녹봉·사곡·賑恤·物價折米法 등을 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수입으로서는 조세·세공이 주가 되었고 지출로서는 녹봉·사곡이 중요하였다. 이렇게 보면 고려의 삼사는 백관지에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중외 전곡의 출납 회계를 관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려의 삼사는 명실공히 일원적인 최고재정기관의 기능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고려에서는 6부의 하나인 戶部와 그 밖의 재정관서(寺·署)가 정상적인 기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삼사는 유명무실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의 삼사가 송과 같은 3부제도 아니며 그 관원 구성도 방대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백관지에는 호부가 戶口·貢賦·錢粮의 사무를 관장하였다고 하였는데, 실 제로 호부는 토지·호구·공부·전량·농상 등 전반적인 경제사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고려에서는 삼사보다는 호부가 실질적으로 재정사무의 주무 관청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종 4년(1050) 11월 判에 의하면 주현이 水旱蟲霜으로 화곡이 부실할 때 수령이 호부에 신고하면 호부는 삼사에 이를 송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호부가 삼사의 하부기구가 아닌가 생각케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삼사와 호부는 그 인원 구성도 병렬적으로 동등하였고 관원의 관품과 대우는 오히려 호부가 우세한 편이었다. 다만 삼사가 회계담당의 이속의 수만 많았던 것으로 보아 삼사는 회계를 담당한 이른바 計司로서의 역할만을 맡았던 것 같다.

 이와 같이 고려에서는 호부가 재정사무의 주무 관청 노릇을 하고 있었고 삼사는 권력기구가 아닌 단순한 회계기관이었을 뿐이었다. 고려는 비록 송제의 삼사를 채용하였지만 3성·6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기형적인 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고려 삼사의 기능이 송의 그것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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