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8) 어사대와 낭사
  • (1) 대간의 설치

(1) 대간의 설치

 고려에는 臺諫이라는 言官이 있어 중요한 직능을 행사하였다. 대간이란 臺 官과 諫官을 말하는 것으로 御史臺와 中書門下省의 郎舍에 있는 관원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臺諫」이라 불렀으나 또한 「臺省」 또는 「省臺」라고도 칭하였다. 여기의 「省」이란 중서문하성의 省郎의 뜻이다. 이들은 전혀 다른 기구에 속해 있었으나 같은 언관이라는 점에서 함께 대간이라 병칭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들 대간의 관서인 어사대와 낭사는 언제 정립되었는지 살펴 보아야 하겠다.0151)고려의 臺諫制度에 대하여는 朴龍雲,≪高麗時代 臺諫制度硏究≫(一志社, 1980)가 있다. 이 글은 이에 의지한 바 컸음을 밝혀 둔다.

 백관지에 의하면 국초에 司憲臺가 설치되고 성종 14년(995)에 어사대로 고쳤는데 여기에는 大夫·中丞·侍御史·殿中侍御史·監察御史가 있었다고 하였다. 대개 국초라 하면 태조대를 생각케 되지만 실제로 성종 이전에는 관제가 정비되지 않았고 사서에 대관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역시 성종대 이후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어사대로 개정하기 전인 성종 9년(990)에 金審言의 건의에 따라 西京에 分司司憲 1인을 두었다 하였고,0152)≪高麗史≫권 93, 列傳 6, 金審言. 성종 12년에 서경의 常平倉 미곡을 分司司憲臺가 맡아 출납을 관장토록 하였으며0153)≪高麗史≫권 80, 志 34, 食貨 3, 常平義倉. 같은 해 윤 10월에 監察司憲 李蒙戩을 거란 군영에 請和使로 파견한 사실을 보면,0154)≪高麗史節要≫권 2, 성종 12년 윤 10월. 이미 성종 12년 이전에 사헌이 있는 사헌대가 설치되었음이 증명된다. 성종 9년에 서경에 분사사헌대가 있었다면 이 때 중앙에 本臺가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 사헌대는 백관의 호를 개정하여 3성·6관제가 출발한 성종 초에 설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 같다.0155)성종 이전에도 臺官이 있었던 자료가 보인다. 태조 20년에 건립된 海州의 廣照寺 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의 비문을 書幷篆한 사람이 御史大夫 李奐相이었고, 또 태조 22년이 세워진 砥平의 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의 비문 찬자가 역시 御史大夫 崔彦撝로서 엄연히 어사대부직이 나타나 있다(≪朝鮮金石總覽≫上, 朝鮮總督府, 1919). 그러나 이들 어사대부는 신라의 崔致遠의 예와 같이 고려에 사환하기 이전 당에서 받은 형식적 관직으로 짐작된다.

 사헌대는 성종 14년에 정식으로 어사대로 개정되었다. 성종 원년에 御事都省이라는 고려 독자적 명칭이 당제대로 尙書都省으로 개정되고 국초의 內書省이 秘書省으로, 司■寺가 衛■寺 등 당제로 이름이 바뀐 성종 14년 사헌 대도 역시 어사대로 개칭된 것이다. 그리고 그 관원도 백관지에 있는 바와 같이 御史大夫 등의 정식 관직으로 정비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음 諫官制度는 언제 성립하였을까, 백관지에는 門下府는 百揆·庶務를 관장하고 그 낭사는 諫諍·封駁을 관장하였는데, 국초에 內議省이라 하였다가 성종 원년(982)에 內史門下省으로 개정되고 문종 15년(1061)에 중서문하성으로 개칭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태조대에 설치된 내의성은 낭사가 소속된 간쟁기관이었고 성종 원년에 정식으로 당제에 따라 내사문하성으로 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의성이 내사문하성으로 개정되었다는≪高麗史≫찬자의 견해는 곧 찬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廣評省 중심의 고려 초기 정치체제는 뒤의 당제를 채용한 3성·6부제와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었으므로 이를 도식적으로 비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식으로 낭사가 설치된 것은 성종 원년의 내사문하성의 설치에서 비롯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낭사에 散騎常侍(常侍) 諫議大夫 등의 간관이 존재하여 언관의 직무를 맡았던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고려의 대간제도는 성종 원년을 시점으로 하여 14년에 정식 당제의 명칭으로 완성되었다. 물론 건국 후 태조대부터 그에 준하는 기능의 관원이 있었을 것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으나 그것이 하나의 제도로 확립된 것은 성종에 이르러서였다. 성종대는 유교적 정치이념의 구현으로 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적 정책이 추구된 시기로서, 중국의 제도를 채용하여 정치제도를 정비하였으므로 이 때 대간제가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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