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3. 지방의 중간 통치기구
  • 2) 경기
  • (1) 경기의 성립

(1) 경기의 성립

 京畿는 王京을 둘러 싼 지역으로 지방행정 구획상 가장 중요한 곳이다. 후대인 조선시대에 전국 8道 가운데 경기의 서열이 제일 앞선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경기의 지방행정 구획상의 지위는 오히려 5道, 兩界에 비하여 떨어져 있었으니, 이는 고려 지방제도의 하나의 특성이었다.0564)고려시대 京畿에 관한 논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尹武炳,<所謂 「赤縣」에 대하여>(≪李丙燾華甲紀念論叢≫, 一潮閣, 1956).
邊太燮, 앞의 책.

 고려가 개경 주변의 주현으로서 경기를 삼은 것은 현종 때의 일이다. 즉 현종 9년(1018)에 개성현에 예속된 3현과 장단현에 예속된 7현을 아울러 상서도성에 직접 예속케 하고 이를 「京畿」라 칭하였는데, 이것이 경기제의 시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에 앞서 성종 14년(995)에 赤縣 6개와 畿縣 7개를 개성부 관할 하에 두어 경기의 모체가 이루어졌으며, 이 개성부는 또한 건국초 설치한 開州를 개편한 것이었으므로 고려시대 경기의 성립을 살펴 보기 위하여는 이 개주의 설치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태조는 건국한지 6개월 후에 자신의 출신지인 松嶽 지방에 수도를 정하고 이를 개주로 삼았다. 즉 태조 2년(919) 정월에 송악 남쪽에 서울을 정하여 개주로 하고 궁궐을 창건하고 市廛을 세우며 坊里를 나누어 5部로 정하였다 한다.0565)≪高麗史≫권 56, 志 10, 地理 1, 王京 開城府.
≪高麗史≫권 1, 世家 1, 태조 2년 정월.
≪高麗史節要≫권 1, 태조 2년 정월.
원래 이 곳은 고구려의 扶蘇岬으로 신라 때 송악군으로 개정하였는데 고려 건국과 더불어 수도가 되어 개주가 된 것이다.

 개주는 성종 때 개성부로 개편되고 적현 6과 기현 7을 관할케 되었다. 즉 성종 14년(995) 개주는 개성부로 승격되고 京의 외관인 府尹이 설치되었으며, 나아가 赤(京)·畿 13현을 관찰케 되었던 것이다.0566)≪高麗史≫권 56, 志 10, 地理 1, 王京 開城府.
≪高麗史節要≫권 2, 성종 14년 7월.
이러한 개성부윤의 설치와 적(경)·기 13현의 관할은 바로 경기제의 모체라 할 수 있다. 이 때의 지방제도 개편은 唐制를 모방한 것인데, 개주의 개성부로의 승격은 당의 雍州의 京兆府로의 승격과 같은 것으로 여기에는 당제와 같이 부윤을 두어 일반 州府와 구별하는 특별구를 삼은 것이었다. 개성부는 하나의 지방기구이지만 왕경을 통치하는 특별구이기 때문에 개성부윤은 京官의 대우를 받아 중앙기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0567)그 증거로 목종 원년의 田柴科는 중앙관리만 포함되고 지방관은 제외되고 있었는데, 유독 開城府尹만은 제5과에 편입되고 있다.

 성종 때의 개성부의 설치는 커다란 변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종래 왕경을 통치한 개주와 더불어 이제는 그 주변지역인 적현·기현 13현까지도 아울러 통치케 되었던 것이다. 적현·기현도 역시 당제를 본딴 것으로 京都 所治를 적현이라 하고 京之旁邑을 기현이라 하여 上都 京兆府도 2개의 적현과 21개의 기현을 두어 경조부윤의 통치를 받게 하였는데, 고려도 이 예에 따라 개성부에 6개의 적현과 7개의 기현을 예속케 한 것이었다.

 이 때 개성부 관할하의 적·기현 13개의 현명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뒤의 현종 9년(1018)에 적·기현이 개편된 경기 12현이 이에 해당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종 때의 경기 12현은 開城·貞州·德水·江陰·長湍·松林·臨津·兎山·臨江·積城·坡平·麻田이다. 나머지 1현은 확실치 않으나 건국 후 개주가 설치된 송악이 적현의 하나로 왕경을 통치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그것은 당의 경조부에서도 두 적현이 바로 都內를 관할하고 있었던 예에서 추측된다. 그렇지만 이들 적·기 13현 가운데 적현 6과 기현 7을 가려내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만 적현 6은 왕경에 근접한 곳이고 기현 7은 그 외곽지역이었을 것임은 틀림없다고 보인다.0568)尹武炳은 앞의 글에서 6赤縣을 왕릉의 소재를 근거로 하여 松岳·開城·貞州·德水·松林·臨津縣으로 추정한 바 있다. 왕경인 開州의 관할현인 松岳·開城縣 및 현종 9년 개성현에 예속된 貞州·德水·江陰 등 5현이 적현에 포함되었을 것은 틀림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고려의 통치제도로 보아 적현과 기현의 구별은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적현이나 기현은 모두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으로 함께 개성부윤의 통치를 받아 제도상 어떤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마침내 현종대에 이르러 정식 경기제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현종 9년(1018)에 개성부를 혁파하고 대신 개성현과 장단현에 현령을 설치하여 개성 현은 정주·덕수·강음 3현을, 장단현은 송림·임진·토산·임강·적성·파평·마전 7현을 각각 관할하게 하였는데, 이들을 경기라 칭하고 모두 상서도성에 직예케 하였다는 것이다.0569)≪高麗史≫권 56, 志 10, 地理 1, 王京 開城府. 그러므로 종래의 적현 6과 기현 7이 곧 경기 12현으로 개편된 것이다. 이 때 松岳縣은 京中 5부로 됨으로써 자동적으로 해체되어 경기는 2개의 主縣과 10개의 속현으로 구성되게 된 것이다.

 현종 9년(1018)의 경기의 성립과 그 통치제도의 개정은 이때 전국적으로 실시된 지방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즉 현종 9년 2월에 諸道安撫使를 혁파하고 전국에 4都護·8牧·56知州郡事·28鎭將·20縣令을 설치하였는데,0570)≪高麗史節要≫권 3, 현종 9년 2월. 경기에서 개성부윤이 폐지되고 개성·장단현령이 설치된 것은 이러한 개편의 일부로 실시된 것이었다. 이러한 현종대의 지방제도의 정비가≪高麗史≫지리지 구성의 골격이 되고 고려시대 군현제도의 기본을 이루었는데, 경기제는 이를 계기로 성립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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