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3. 지방의 중간 통치기구
  • 4) 양계
  • (1) 양계병마사제의 성립

(1) 양계병마사제의 성립

 고려는 전국을 경기·5도·양계로 구분하여 경기는 개성부사가 통치하고 남쪽의 5도에는 안찰사를 파견하였으나 북쪽에는 특별히 양계를 설치하여 兵馬使를 파견하였다. 이것은 양계는 변경지역으로 군사적인 통치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고려는 남부의 민사적인 5도에 대하여 북부에는 군사적인 양계를 설치하여 안찰사와 다른 병마사를 파견함으로써 고려의 독특한 지방중간기구를 이루었다.0616)고려의 양계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金南奎, 앞의 글.
―――,<高麗 兩界의 監倉使에 대하여>(≪史叢≫17·18, 高大史學會, 1973).
邊太燮, 앞의 책.
李基白,<高麗 兩界의 州鎭軍>(≪高麗兵制史硏究≫, 一潮閣, 1968).

 고려에 처음으로 양계병마사가 설치된 것은 성종대의 일이다. 즉 성종 8년(989)에 처음으로 東西北面에 3품관인 병마사 1인을 설치하여 閫外를 專制케 하였는데, 또한 知兵馬事·副使·判官·錄事도 아울러 파견하였다 한다.0617)≪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外職 兵馬使.
≪高麗史節要≫권 2, 성종 8년 3월.
이 때 북계에 설치된 병마사가 과연 후대의 양계병마사와 같이 상주하는 외직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선 이 기사에서는 동서북면에 병마사 1인이 파견된 것으로 나와 있어 양계로 구분된 것 같지 않으며, 또한 실제로 병마사가 기록에 보이는 것은 현종 10년(1019)의 ‘東北面兵馬使’이고0618)≪高麗史節要≫권 3, 현종 10년 정월. 지방 통치기구로 표기된 것은 정종 즉위년(1034) 八關會 때 上表 陳賀하는데 ‘東

 西 2京·東北兩路兵馬使·4都護·8牧’이 함께 나열된 기사에 비롯된다.0619)≪高麗史≫권 6, 世家 6, 정종 즉위년 11월.
靖宗 3년 정월 制에서는 ‘外任及東西兵馬官吏’라 하여 양계 병마사가 外任과 동일시 되고 있다(≪高麗史≫권 64, 志 18, 禮 6, 凶禮 五服制度).
현종 20년(1029)에 동북면병마사 李周佐가 朔方道의 登州·溟州 관내 19현이 蕃賊의 침구로 생업이 곤란하다 하여 무휼을 가할 것을 청하여 왕이 조부의 감면을 명한 바 있다.0620)≪高麗史≫권 94, 列傳 12, 李周佐. 이는 현종 후년에 이미 양계병마사가 외직의 기능을 행사하였음을 보여 준다. 성종 8년(989)에 시작된 북계의 병마사는 현종 때 군사적인 양계병마사로 되고 그 후년에는 행정관의 성격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계병마사제의 성립은 예종대(1105∼1122)에 출발한 5도안찰사에 비하여 자못 이른 것이다. 이것은 남도의 주현에 비하여 북계의 州鎭이 보다 일찍부터 설치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변경지방은 군사적 필요에서 일찍부터 防禦州·鎭의 외관이 설치되었으며 그의 상부조직인 양계병마사제도 먼저 성립하게 된 것이다.

 지방통치기구로 성립한 병마사제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조직되었다.0621)≪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外職 兵馬使.

兵馬使  3품 1인

知兵馬事 3품 1인

兵馬副使 4품 2인

兵馬判官 5·6품 3인

兵馬錄事 參外權務 4인

 즉 양계에는 3품관인 병마사 밑에 지병마사·부사·판관·녹사 등의 요원으로 병마사기구가 편성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병마사의 임명 사실을 보면 이와는 다른 것이 나타난다. 문종 초까지는 양계에 각각 병마사(장관)와 부사(차관)가 함께 파견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장관으로서 서북면에 知兵馬事, 동북면에 兵馬副使가 파견되고, 예종 이후에는 서북면에 병마사, 동북면에 병마부사가 임명되고 있어 병마사나 지병마사·병마부사가 하나의 장관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비록 정식 병마사가 아니고 지사나 부사라 하더라도 어엿한 병마사기구의 장관으로서 일반적으로 「병마사」라 통칭됨에는 차이가 없었다. 6部 尙書로 병마사에 임명되면 正兵馬使가 되고, 卿은 지병마사, 侍郎과 少卿은 병마부사가 됨이 원칙이었다.

 이들 병마사기구의 관원은 모두 6개월 교대였음은 5도안찰사와 같았다. 양 계 병마사는 6개월 임기로 춘하번과 추동번으로 나누어졌으니, 임명 시기는 대체로 춘하번은 정월(또는 2월), 추동번은 7월(또는 8월)이었다. 이들 양계 병마사기구는 兵馬使營에서 사무를 보았는데 병마사영은 양계의 유일한 계수관인 安北都護府와 安邊都護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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