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3. 지방의 중간 통치기구
  • 4) 양계
  • (2) 양계병마사의 통치제도

(2) 양계병마사의 통치제도

 양계는 국방지역이었기 때문에 군사적인 병마사가 파견되어 중간기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병마사는 다만 변경을 지키는 邊將에 그치지 않고 동북면과 서북면이라는 행정구획을 통치하는 지방장관이었다. 이들은 각각 자기 관내의 州鎭의 수령을 통할하고 중앙정부와 연결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양계의 장간을 병마사라 칭한 것은 5도의 민사적인 안찰사에 대하여 군사적 기능이 일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양계는 하위 행정단위인 주현제부터 5도와 달랐다. 5도가 주로 일반 행정구획인 주·부·군·현으로 편성된 데 대하여 양계는 군사적인 방어주·진으로 구성되었다. 성종 2년(983) 남부에 12牧이 설치되었을 때 북계에는 여러 방어사주·진이 설치되었는데, 외관제가 일단의 완성을 본 현종 9년(1018)에는 전국에 4都護·8牧·56知州郡事·28鎭將·20縣令이 설치되었으니, 여기 군사적인 외관으로는 4도호·28진장 외에 56지주군사 중에도 많은 방어사주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제 양계의 주진의 구성을≪高麗史≫지리지에 의거하여 표로 만들면 다음<표 4>와 같다.

  主 縣 軍 事 州 鎭 民 事 州 縣
防 禦 使 鎭使·將 知 州 事 縣 令
西 北 面 43 25 12(鎭使 8, 鎭將 4)   6
東 北 面 30 10 10(鎭使 3, 鎭將 7) 2 8
합 계 73 35 22 2 14

<표 4>兩界 州鎭의 구성

 여기서는 交州道 소속의 交州·春州·東州를 원래대로 동계에 포함시켜 계산하였다.

 위 표를 보면 양계에는 외관이 파견된 主縣 73개 가운데 군사적인 방어사와 진사·진장이 설치된 주진이 57개이고 민사적인 지주사와 현령이 설치된 주현이 16개로 단연 군사적 주진이 많다. 더욱이 민사적인 주현은 準南道라 할 수 있는 西京 부근과 交州·溟州道지방에 분포하고 있어 순북계지역에는 군사적인 방어사주와 진으로만 편성되고 있음이 나타난다.0622)邊太燮,<高麗兩界의 支配組織>(앞의 책), 204∼205쪽. 이와 같이 군사적인 주진으로 구성된 양계에 병마사가 임명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계의 군현제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주진에 외관이 설치되어 외관이 없는 屬縣이 적은 점이다. 고려 중기를 기준으로 양계의 총주현은 122개였는데 그 증 외관이 설치된 주현이 76개이고 속현은 46개였다. 이는 경기·5도의 총 주현 381개 가운데 主縣 54, 屬縣 327개에 비하여 절대로 외관의 비율이 많은 것이다. 더욱이 이들 적은 속현도 준남도라 할 수 있는 서경과 춘주도·명주도가 있는 오늘의 강원도지방에만 분포하여 순북계지방에는 모두 외관이 설치되고 있다. 이것은 고려왕조가 북계에 대하여 군사적인 필요에서 집권적인 지방통제를 강화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병마사는 양계의 군사적인 기능을 주로 하였으나 또한 민사적인 행정기능도 함께 하였다. 그것은 병마사가 양계의 주진을 관할하는 중간기구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5도안찰사가 민사적인 .기능을 주로 하면서도 도내의 군사적 기능도 아울러 가진 것과 대조가 되는 것이었다. 명종 18년(1188) 制에서 양계병마사와 5도안찰사는 民間利病을 咨訪하고, 守令의 賢否를 출척하며, 寃滯를 審治하고, 農桑을 勸課하며, 군사를 무휼하고, 豪强을 摧抑하며, 세공을 징수한다고 하여0623)≪高麗史節要≫권 13, 명종 18년 3월. 양자가 군사적·민사적 기능을 똑같이 가졌음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양계 병마사와 5도안찰사의 기능은 그들이 중앙과 주현 사이의 중간 기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수령의 현부를 출척하였다는 것은 주현의 상급 행정기구인 까닭이었다. 문종조와 사실로 보여지는 외옥수에 관한 判을 보면 외옥수를 監行 推檢하는데 서경은 分臺, 양계는 병마사, 關內西道는 안찰사, 東南海는 都部署, 그 외 지방은 계수관이 담당하여,0624)≪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職制. 남부지방이 아직 계수관으로 중간기구의 기능을 행하였을 때 이미 양계에는 병마사가 중간기구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변경지방의 군사적 필요에서 양계가 보다 일찍부터 짜여진 지배조직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중기 이후에는 양계병마사가 5도안찰사와 동렬적인 지방 중간기구가 되었으나 역시 양계의 풍요성에 따라 병마사는 안찰사보다 권력이 강대하고 서열이 높았다. 그들은 특별히 부월을 親授받고 閫外를 전제하여 營主·藩鎭·都統 등으로도 불리웠던 것이다. 양계병마사 기구에만 특별히 감찰기관인 분대가 설치된 것도 양계의 중요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즉 북계에는 서경과 서북면·동북면에 각각 분대로서 監察御史가 파견되었는데 이는 5도안찰사에는 없는 특별기구였던 것이다.

 양계의 통치제도의 특수성은 分道制가 실행된 점이다. 병마사와 주진 사이 에 경제적 군사적인 분도가 또 하나 설정된 것이다. 그 하나가 監倉使制이다. 감창사는 북계에 雲中道·興化道, 동계에 溟州道·朔方道·沿海道 등 5도에 설치되었다.0625)≪高麗史節要≫권 12, 명종 3년 윤 정월에는 7道按察使(이때는 5道가 7道로 분화되었음)·5道監倉使에게 모두 勸農使를 겸한다 하여 5道監倉使의 칭이 나온다. 문종조에는 春州道監倉使가 있었는데 인종 때부터 안찰사도로 바뀌어 소멸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원래 조세와 창름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즉 양계에서는 조세를 그대로 현지의 군수용으로 쓰고 稅籍을 없애어 貢布의 징수도 하지 않았는데, 이에 따라 특별히 조세와 軍資를 전담하는 감창사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 병마사가 군사·민사의 모든 분야를 관장한데 대하여 감창사는 小道 내의 조세를 비롯한 민사문제만을 다루었던 것이다.

 양계에는 군사적으로도 분도제가 있어 防戍將軍이 파견되었다. 이 군사적 분도는 시대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으나 서북면에는 義州·靜州·昌州·朔州·延州·宣州 등이 있고 동북면에는 定州가 보인다. 양계 중에서도 국경지대의 大州에 분도가 설치되어 이웃의 여러 주진이 예속된 군사적 집단을 분도제라 할 수 있다. 이들 분도 장군은 병마사의 지휘를 받았지만 또한 소도 내를 순행하여 州守를 통할하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군사적인 중간기구가 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고려는 남부의 민사적인 5도안찰사에 대하여 북부에는 군사적인 양계병마사제를 실시하여 그 통치방법에 차이를 두었는데 이는 고려 지방제도의 특수성이었다. 언제나 외적의 침범에 대비해야 했던 고려로서는 변경 지대인 양계를 일반적인 행정구획으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병마사를 지방장관으로 삼고 군사적인 임무를 주로 하게 하였으며, 또 계내에 감창사도와 분도장군제의 또 하나의 중간기구를 갖추어 지방통치제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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