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Ⅲ. 군사조직
  • 2. 주현군과 주진군
  • 2) 주진군과 국방체제
  • (1) 양계의 주진과 주진군

(1) 양계의 주진과 주진군

 兩界는 북방민족과의 국경지대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침략해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계는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특수한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계를 구성하였던 행정단위는 州·鎭·縣 등이었다. 그 중에서 현은 그 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兩界에서는 어느 정도 후방 지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淸川江 및 元山灣 이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면 가장 수가 많았고, 주로 전방 지역에 위치하였던 것은 防禦使와 鎭將(使)이 임명되는 주와 진이었다. 결국 양계 행정조직의 기본 단위는 5道의 주현과는 달리 주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계 주진은 성곽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高麗史≫兵志 城堡條에 나오는 축성 기록의 거의 대부분은 양계의 그것이다. 그러므로 축성은 곧 주진의 설치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諸州鎭은 諸城이라고도 불리웠다. 다음의<표 4>와<표 5>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의 공식문서인 「式目形止案」에도 각 주진이 某城으로, 제주진이 제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와 같이 행정도시가 아니라 무장도시였던 양계의 제주진은 각각 하나의 독립된 전투단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5도의 제현과는 달리 屬縣을 거느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0800)江原正昭,<高麗の州縣軍に關する一考察>(≪朝鮮學報≫28, 1963), 38쪽. 그리고 양계의 제주진은 安北(北界)·安邊(東界)의 두 都護府에 의해 관할되었다. 도호부는 국방을 위한 군사 기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도 양계 주진이 군사적 성격이 강한 행정단위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0801)이상 兩界 州鎭의 군사적 성격에 대해서는 주로 李基白,<高麗 兩界의 州鎭軍>(앞의 책), 240∼244쪽에 의거하였다.

 ≪高麗史≫兵志 州縣軍條에는 地方軍 모두를 주현군이라고 하고 있지만 州鎭의 지방군이 州縣의 그것에 선행되어 기록되어 있다. 한편≪高麗史≫地理志에서는 5道에 이어 兩界가 취급되고 있음에 비교한다면 이는 주진에 배치된 지방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고려시대에도 역시 그렇게 인식되었을 법하다. 그리고 주진의 지방군에 대해서는 지휘계통을 비롯하여 다양한 부대들의 지방별, 부대별 인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주현의 지방군에 대해서는 단순히 지방별·부대별 인원 수만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양계의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주진의 지방군이 주현의 그것보다 조직적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0802)李基白, 앞의 책, 244∼245쪽. 千寬宇도 兩界와 5道의 지방군이 구별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앞의 책, 27쪽의 주 27). 이와 같은 까닭에 5도의 주현에 배치된 지방군을 주현군이라고 한다면 양계의 주진의 그것은 州鎭軍이라고 구별하여 파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0803)李基白, 앞의 책,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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