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Ⅲ. 수공업과 상업
  • 2. 상업과 화폐
  • 2) 대외무역
  • (2) 거란·요와의 무역

(2) 거란·요와의 무역

고려와 거란과의 교섭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태조 5년(922)에 거란이 낙타와 말, 모직물을 보내옴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의 북진정책과 충돌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평화적인 교역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徐熙의 외교로 강화가 성립된 후, 목종 8년(1005)에 保州(義州)에 호시장인 榷場이 설치되어 물품이 거래되었다. 보주의 각장무역은 현종 원년(1010) 거란의 2차 침입으로 폐지되고 말았다. 그 후 문종 16년(1062)에는 宣義軍 남쪽에 買賣院을 설치하고, 선종 3년(1086)에는 압록강변에 각장을 재개하여 무역을 하려고 했으나, 강동 6진의 문제 이후 양국 사이에 새로운 분쟁을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선종 5년에도 각장 설치가 제기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고려는 송과의 교역에서 경제적·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고 있어서 거란과의 무역은 절실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각장 설치를 반대하였던 것이다.

각장무역이 폐지됨에 따라 양국 사이에는 의례적인 사행무역이 주가 되고, 일부 밀무역도 이루어졌다. 무역품목은 금·은·동 등 금속류, 저포 등 포백류, 龍鬚草席·藤器 등 공예품, 필묵·저지 등 지묵류, 鷹鶻類가 수출품의 주종이었다. 거란으로부터의 수입품은 능라·丹絲, 양을 주로 한 가축류 등이 주종이었다. 전후 200년 간에 걸친 양국 관계는 대부분 긴장관계가 계속될 뿐 통상과 무역관계는 그다지 긴밀하지 못하였다.1422)거란·요와의 무역은 다음 글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하였다.
丸龜金作,<高麗と契丹·女眞との貿易關係>(≪歷史學硏究≫5-2, 1935).
李龍範,<麗丹貿易考>(≪東國史學≫3, 1955).
徐炳國,<高麗·宋·遼의 三角貿易攷>(≪白山學報≫15, 1973).
姜萬吉, 앞의 글.
朴龍雲, 앞의 책.
홍희유,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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