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Ⅰ.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1) 신분제도의 형성과 구조
  • (1) 신분과 신분제도

(1) 신분과 신분제도

 사회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사회구성원들은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질 수가 있다. 주로 경제적인 지위의 차이를 기준으로 해서 집단을 나눌 때는 흔히 나누는 단위로서「계급」이란 용어를 쓴다. 노동자계급이니 무산자계급이니 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한편 사회적 지위의 높낮이를 가지고 집단을 나눌 때는 구분의 단위로서「계층」이란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지식(계)층이라든지 학생(계)층이라든지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계급이나 계층의 용어를 가지고 사회구성원을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기는 현대사회이건 전근대사회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근대사회는 신분사회로서 근대사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전근대사회에 있어서의 신분도 계급이나 계층과 마찬가지로 사회구성원을 집단으로 구분하는 단위였다. 구분의 기준은 신분상의 지위의 차이였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신분상의 지위는 각기 혈통에 따라서 세습되는 사회적 권리 (특권)와 의무(제약)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여기서의 사회적 권리나 의무는 법률이나 관습으로서 또는 불문률로서 정하여졌다. 신분은 계급과는 일단 구분되며 계층에 포괄될 수 있는 개념이다. 신분은 계층의 일종으로 이해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을 좀더 포괄적인 계층의 관점에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가령 良人 신분을 양인신분(계)층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분계층의 세습적인 사회적 특권이나 제약이 법률·관습·불문률 따위로써 규정되어 있고, 그러한 규정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그 체계가 일정한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되었을 때, 신분제(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어느 특정한 신분계층 하나만 놓고서도 신분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또 몇 개의 신분층을, 나아가 한 사회의 모든 신분층을 가지고도 그럴 수가 있다. 그것들이 하나의 체계로 묶일 수 있는 한에서는 그러하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신분제도는 하나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신라사회에서 예를 들면, 진골제도도 신분제도였고, 6·5·4두품제도도 역시 신분제도였다. 두품과 진골을 아우른 骨品制度도 신분제도였다. 良賤制度가 전체로서 독립된 신분제도였듯이, 양인제도나 천인제도도 마찬가지로 각기 독자적인 신분제도였다.

 이와 같이 여러 신분제도들이 저마다 체계를 가지고 사회에서 나름대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대되었다. 단 하나의 신분제도만이 있었던 신분사회는 없었다. 오늘날 전통사회에 있었던 여러 복잡한 신분제도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서 전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까닭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여러 신분제도의 내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그 적용이 엄격하게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전체의 모습을 계통을 세워 설명하기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쉽지가 않다.

 신라의 골품제도가 마치 그 사회의 신분제도를 전부 설명하여 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노비제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일반 양인들의 신분문제도 골품제도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골품제도는 기본적으로 귀족신분제도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명백한 규정과 엄격한 적용으로 널리 알려진 골품제도라고 하여도 신라의 신분제도의 전모를 밝혀주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고려의 여러 신분제도들은 신라의 경우와 비교하여 그 규정이나 적용에 있어서 느슨한 편이다. 신분제도 전체의 모습이나 특성에 관한 명료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고려의 신분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은 더욱 어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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