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Ⅰ.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관인계층
  • (5) 귀족의 계층구성

(5) 귀족의 계층구성

 과거에는 귀족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없는 속에서 그것을 관리(특히 문·무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점차 연구가 깊어지면서 귀족의 범위를 좁혀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033)고려 귀족에 관한 최근의 학설사적 검토는 金龍善,<高麗貴族社會成立論>(≪韓韓社會發展史論≫, 一潮閣, 1992) 참고. 그럴 경우 범위를 설정하는 기준이 문제가 된다. 종래에는 이와 관련하여 관직을 중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그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서 관품을 더 내세우는 일도 있고, 문벌의식이라든지 통혼권 나아가 경제적 특권들까지를 폭 넓게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연구의 토대 위에서 귀족의 개념과 범위 그리고 그 범위의 설정에 필요한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에 있어서 사회구성원 가운데 누구는 사회적으로 권위가 인정되어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천시되거나 멸시받는 수가 있었다. 또 누구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는데 다른 사람은 불이익을 받는 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관리가 되는 일이 당인하였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은 관리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였다. 여기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특권)나 의무(제약)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권리(특권)나 의무(제약)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권이나 제약은 사실에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만 사람마다 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가령 門下侍中은 그러한 특권을 가장 많이 가졌지만 그가 안고 있던 제약은 가장 적었다. 그런가 하면 노비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여기서 말하는 특권과 제약은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결정하였으며, 그 차이는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뜻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특권과 제약이 대를 이어 세습되고 이러한 사실이 법이나 관습 또는 불문률로서 정해져 있을 때 그것이 규정하는 사회적 지위는 신분적 지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신분적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들이 귀족인 것이었다. 신분적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들이 소속된 신분계층이 귀족신분계층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누가 여기에 포함되는가 하는 점이다. 누구를 넣고 빼고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당연히 신분적 특권(권리)이나 제약(의무)의 많고 적음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당연히 많고 적음을 재는 준거가 필요하다. 이 준거의 마련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특권과 의무의 다소를 재는 일은 그만큼 정교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측면의 특성(특권과 제약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을 함께 고려하여 귀족의 범위를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연구는 말보다 훨씬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주로 지금까지의 연구는 관직에 주목하여 귀족의 범위를 생각하였을 뿐이므로 이런 점에서 만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종래의 연구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직은 기본적으로 그것에 나아가는 사람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여 주는 것이었다. 또 관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치적 권리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관직자가 되면 사회적 위엄이나 경제적 이익이 수반되었다. 관직자라고 하는 정치적 지위가 관련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까지를 결정하는 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관직에 주목하여 관련된 사람들의 신분적 지위의 높낮이를 재는 일은 가장 유력한 연구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관직자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특권이 매우 큰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관직을 대대로 가질 수 있는 신분층을 그렇지 못한 신분층과 구분하여 귀족으로 이해한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고려사회에서 신분적 특권과 제약의 정도 차이를 재는 준거로서 가장 큰 것은 대대로 남에게 소유되어 매매·증여·상속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대대로 관리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준거가 되리라고 본다.

 따라서 문무 양반은 물론 남반까지도 귀족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같은 귀족이지만 남한은 문반과 무반에 비하여 신분적 지위가 낮은 신분층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면 같은 귀족이고 동일한 관인층이며, 단일한 관품체계에 똑같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의 신분상 지위가 문반·무반의 그것에 비하여 낮아야 했는가. 이것은 왜 그들이 신분적 특권은 더 적고 신분적 제약은 더 많아야 했는가 하는 물음과 같다. 그 이유는 그들의 役, 즉 사회적 기능이 문·무반의 그것과 다르고, 낮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대된 역의 수행은 관직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였지만 궁중직에 한정되었던 것이다. 똑같은 논리로 문반은 문반직에, 무반은 무반직에 한정되었다. 각기 성격이 다른 세 班의 관직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仕路를 이루었는데, 이 사로는 관품의 규정을 받는 관직의 상하체계였다. 똑같이 종9품에 설정된 관직에서 제각기 출발하지만, 문반은 1품인 문하시중, 무반은 3품인 上將軍, 남반은 7품인 內殿崇班까지 올라가 벼슬길이 끝났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귀족의 신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단순히 관직과 관품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는 것은 별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관품은 관직을 규정하여 주는 일정한 체계이지만, 관직을 규정하지 않는 관품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발령을 대기할 때처럼 혹 이 둘이 떨어질 수가 있기는 하겠지만,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각기 성격이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되었고, 관품에 의하여 그 지위가 규정된 관직들의 상하연결로 이루어진 사로의 다름이 귀족의 계층구성을 이해하는 데 보다 적절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벼슬길의 차이에 따라서 고려는 독자적인 신분층을 설정하였거니와, 그 설정의 단위로서 제시한 것이 반이었던 것이다.

 사로의 다름 즉 반의 차이에 따라서 고려 귀족의 범위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연구가 있다.034)邊太燮, 앞의 글(1961).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문반과 무반과의 신분상 차이가 컸음을 지적하고 문반만을 귀족으로 볼 것을 제의하였다. 이 연구는 이 점에서 문·무·남반의 세 반을 모두 귀족으로 보는 입장과는 차이가 난다. 문반은 최고의 귀족일 뿐 유일한 귀족은 아니다. 이 견해의 차이는 서로가 제시한 기준이 엄격한 것인가 아닌가, 또한 귀족의 범위를 크게 볼 것인가 좀 좁혀서 볼 것인가 하는 입장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인데, 어느 쪽이 옳은가를 판단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가령 문하시중과 같은 최고의 관직까지 대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기대되는 문반이 귀족이 되는 조건이었다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그렇지 못한 반은 귀족이 못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미관말직이라도 대대로 관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여 이 점이 귀족의 조건으로서 충분하다면 이에 해당하는 남반이 기준이 되어 그렇치 못한 신분층은 귀족이 못 되는 것도 역시 당연하다.

 세 반은 각기 수행하는 업무의 성격이 달라서 저마다 독자적인 벼슬길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가 관직에 있었다는 점에서 같다. 그런데 여기서의 관직은 9관품체계에 포함되어 그 규정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관직도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관직이라도 서리직이나 향리직이 이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散職들이 또한 이와 혼동될 수 없다는 것도 다시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관직체계는 국왕을 정점으로 정 연하게 짜여진 관료조직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관료조직은 안으로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밖으로 나라를 보위하기 위하여 관직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국민에 대한 지배와 국가의 보위에 있어서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기도 하였지만 또 가장 큰 책임도 직접 져야 하는 것이 이 관료조직이었다.035)관료조직의 대내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면, 관료조직에 끼는 관리들이 이루는 사회계층은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대대로 관리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그 사회계층은 지배신분계층이라고도 불리워질 수 있다. 관리가 되어 이 관료조직에 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이 또한 그럴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관리들은 관인신분층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인신분층은 귀족신분층이나 지배신분층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귀족층에 문반·무반·남반의 세 신분층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귀족층 안에 더 세분된 계층이나 신분층을 설정할 수도 있다. 세분하는 기준이 정당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더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비근한 예를 들면 관리들의 충성의 정도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같은 관리라고 하더라도 공신의 자손과 반대의 경우가 똑같은 신분상 지위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 밖에도 국왕과 인척관계에 있는 관리의 자손과 반대로 낮은 신분에 혈연이 닿는 경우가 역시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에 입각한 귀족신분의 연구는 이미 학계에서 시도되어 왔거니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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