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Ⅰ.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6) 양인농민
  • (2) 생산계층

(2) 생산계층

 농민의 중요성은 그들이 무는 전세·공부·요역·군역의 公課·公役이 국가의 財政과 軍政에 긴요하였다는 점에서 우선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의 중요성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주요 담세층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층이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헤아려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생산을 통하여 사회구성원 전부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었다. 농민이 인구의 상당부분이 되었거니와, 자영농이건 전작농이건 생산을 통하여 자신들의 생존부터 스스로 해결하였다. 또 자영농이 내는 전세는 국가에 의하여 관리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 사람들에게 재분배되어 그들의 생계가 이어지도록 하였다. 전작농이 무는 전조는 지주들의 생계를 도왔으며 또 그들로 하여금 국가에 세를 납부할 수 있게 하였다. 농민이 생산을 중단한다면 그 결과는 단순히 국가 재정이 파탄을 맞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예 국민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토지를 떠나서 생산을 중단하게 되는 사태는 국가가 가장 경계하여 마지 않았던 일이었다. 태조가 즉위한 직후에 弓裔의 실정을 비난하였는데, 그가 지적한 가장 큰 궁예의 허물은 농민들에 대한 지나친 수취로 流亡하게 하였다는 점이었다.079)≪高麗史節要≫권 1, 태조 원년 7월 詔. 성종이 지방관에게 내린 다음 교서의 내용을 보아서도 그가 토지 경작을 통한 농민들의 생산을 얼마나 중요한 일로 인식하였는지를 아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라는 백성으로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만약 모든 백성의 마음을 회유하고자 한다면, 오직 三農(봄 밭갈이·여름 김매기·가을 추수)의 일할 시기를 빼앗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 너희 12牧과 여러 州·鎭의 使는 이제부터 가을까지 모두 잡다한 업무를 정지하고 오로지 勸農을 일삼을 것이다. 내가 장차 사신을 보내어 조사하여 田野의 황폐하고 개간된 것과 牧守의 부지런하고 태만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포상하기도 하고 폄출하기도 하겠다(≪高麗史≫권 79, 志 33, 食貨 2, 農桑 성종 5년 5월 敎).

 권농정책의 추진은 비단 태조나 경종의 일만이 아니었다. 역대 군주들은 거의 예외없이 권농을 강조하였다. 그와 관련된 정책은 여러 가지였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그 방향은 농민들을 토지에 묶어두고 그들로 하여금 생산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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