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2. 대장경의 조판
  • 2) 속장의 조판
  • (1) 조판의 동기

(1) 조판의 동기

 현종 2년(1011) 무렵 조판에 착수한 초조대장경인 漢譯 正藏이, 북송의 개보칙판본과 국내 전래본 그리고 문종 17년(1063)에 도입된 거란판본에서 필요한 경론을 가려 수용하여 문종 27년(1073)에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당시에 僧統 義天(1055∼1101)은<代世子集敎藏發願疏>를 올렸다. 敎藏이란 한역 정장에 대한 동양 학승들의 연구저술과 疏鈔를 의미하며 흔히 章疏 또는 續藏이라 일컫는다. 이 상소는 의천이 출가한 지 8년밖에 되지 않은 19세 때 올린 것이다.

비록 經과 論은 갖추어질 수 있게 되었으나, 그에 대한 疏鈔는 결여되어 있으니, 옛 것이나 지금 것이나를 막론하고 요나라와 송나라에 있는 여러 학승들의 科敎(본문의 문구를 단락으로 分科한 해석과 교리판석)를 모아 하나의 藏典을 만들어 널리 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의 태양이 빛을 더하여 사악한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불법을 거듭 일으켜 나라를 두루 이롭게 하며, 이 수많은 세계의 중생들과 더불어 금강의 좋은 씨를 뿌리고, 모두 普賢의 길을 배우고 毘盧遮那의 세계에서 길이 놀도록 하소서 (義天,<代世子集敎藏發願疏>,≪大覺國師文集≫권 14).

 즉 한역 정장은 갖추어질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정장에 대한 章疏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자기가 세자를 대신해서 고금의 것을 막론하고 요나라와 송나라에서 수집한 科敎로써 한 벌의 속장을 갖추고, 이를 널리 펴냄으로써 불교를 중흥시켜 나라를 이롭게 하고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원이라 하겠다. 그러나 부왕 문종은 나이 어린 왕자로서는 어려운 일이라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부왕이 문종 37년(1083) 7월에 승하하고 맏형인 순종이 즉위하였으나 그 해 10월에 돌아감에 중형인 선종이 곧 그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러자 승통 의천은 이번에는 전보다 더 대담하게 교장을 새겨내겠다는<代宣王諸宗敎藏雕印疏>를 올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원효로부터 못난 이 몸에 이르기까지 온갖 善을 쌓아 나라를 보전하고 지극한 仁에 힘입어 일체 만물을 잘 기르려 했는 바, 현종께서는 5천 축의 秘藏을 새기셨고 문종께서는 10만 송의 경전을 새기셨습니다. 경문 원본은 비록 두루 퍼졌지만 章疏는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널리 펴고 보호하려면〔이하 결문〕(義天,<代宣王諸宗敎藏雕印疏>,≪大覺國師文集≫권 15).

 말하자면 이 상소에서는 종래의 수집계획을 아예 바꾸어 조판계획을 강력하게 주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형 선종 임금도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천의 初志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이번에는「求法入宋」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리고 망식읍소하면서 애원하였다.260)義 天,<請入大宋求法表>≪大覺國師文集≫권 5).

 이것은 당시 왕래가 빈번했던 송나라 상인을 통해 입수한 화엄승 淨源법사의 저서에 의해 크게 자극되었으며,261)義 天,<上淨源法師書四首>1 (위의 책, 권 10). 더욱이 그 전해 8월에 서한으로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음에262)위와 같음. 연유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한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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