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3. 불교행사의 성행
  • 1) 불교행사의 유형과 전개
  • (1) 불교행사 성행의 시대적 배경

(1) 불교행사 성행의 시대적 배경

 고려시대에는 태조 이래로 국가나 왕실의 융성과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국가가 주관하는 각종의 불교행사가 수없이 베풀어졌으며, 각 개인에 있어서도 복을 빌기 위한 갖가지 불교 신앙행사가 빈번하였다. 위로는 국왕과 귀족들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같이 국가나 개인의 현세에 있어서의 행복과 번영을 좌우하는 현세이익의 종교로서 불교를 더욱 절실하게 신앙하였기 때문이다.≪高麗史≫世家에 보이는 수많은 불교행사에 대한 기록은 마치 고려 불교가 행사불교로 일관되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고려가 왕권을 중심으로 한 집권사회였고, 또한 그러한 사회에서 왕실의 불교 신앙이 끼친 사회적 영향이 지대한 것이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회의 불교신앙과 그 행사를 서술하기 위하여 우선 왕실불교에 대한 사회적 영향과 그 전개 과정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고려의 창업주 태조 왕건은, 그 출생부터가 불교의 인연에 의한 것이며, 왕위에 오르고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이 오로지 불법의 가호 때문이라고 믿어 일찍이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리하여 국운의 발전을 위하여 불교의 옹호에 더욱 힘을 기울여 많은 절을 세우고 佛事를 크게 이룩하였다. 이같은 정신은 태조의 訓要十條에 의하여 길이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어, 왕실과 불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되었다. 이처럼 불교의 신앙과 보호에 의하여 국가가 발전된다고 믿은 왕실은, 불교를 정치적 입장에서 활용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따른 고려 불교의 몇 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318)洪潤植,<『高麗史』世家篇 佛敎記事의 歷史的 意味>(≪韓國史硏究≫60, 1988), 8∼9 쪽.

 첫째, 왕실을 중심으로 한 집권층은 불교 교리를 중앙집권적인 입장에서 선택하고 해석하여, 불교와 국가 관념과의 합리화를 행하였다. 그것은≪仁王經≫,≪金光明經≫과 관련된 도량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여 자주 설치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둘째, 국가의 입장에서 불교 사원과 교단이 형성되었고, 그 육성책이 마련되었다. 즉 태조는 즉위 2년(919)에 松岳으로 도읍을 옮기고 성내에 法王寺·王輪寺 등 10대사원을 세웠는가 하면, 光明寺·日月寺·外帝釋院·九曜堂·神衆院 등을 창건하여 국가적 사찰로 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셋째, 승려 신분에 대한 국가적 제도와 질서가 확립되었다. 즉 집권적 봉건체제가 정비되어감에 따라 국사·왕사제도, 승려에 대한 尊號, 法階 및 僧科의 제도가 마련되었고, 度牒制의 실시와 불교 교단의 국가적 통제를 위하여 僧官制를 두었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고려의 국가불교는 어떻게 그들의 사명을 다하며 전개되었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불교를 수용하는 쪽의 욕구에 대응하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둘째는 정치적 관계에서 변질될 수 있는 현상을 理想態에 전향시키는 문제 등이 있으나 이는 불교 교의와 재래 토속신앙과의 관계에서 문화 변동의 문제로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조건에 부응하는 일반적 신앙구조를 사회의 존속과 인간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보장하기 위한 필연성, 그리고 불교 신자의 직접적인 행복에 관계하고 일상 생활의 위기와 개인의 상담에 응하여 가족이나 개인의 불행을 제거하고 현실적 곤란을 해결하는 필연성에서의 기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기능은 왕실을 중심으로 한 집권층의 정치적 지위를 옹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고려시대의 불교가 왕실을 중심으로 한 집권층과 깊은 관계를 갖고, 국가 사회의 필요성에 의하여 국교적 기반을 마련함에 있어 불교 경론을 국가 관념과 합치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다시 일상적인 실생활에 부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요청에 따라 재래신앙을 불교적으로 해석함과 더불어 그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고려 불교의 의례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념상으로 국가 관념과 밀접해진 불교가 그 실천에 있어서는 三寶에 공양하고 福과 善을 행하는 불교행사의 儀禮行爲를 통하여 실생활과 합일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 불교행사의 성격으로 우선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은 호국적 성격과 현세 이익신앙의 경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교의례의 호국적 성격과 현세 이익신앙의 경향은 생활 환경에 의하여 그 문화적·사회적 배경을 반영하여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호국적 성격이라는 것도 결국은 현세 이익신앙의 일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현세 이익이란 말할 것도 없이 내세의 이익에 상대되는 것이다.≪法華經≫에서 “衆生이 이 법을 들으므로 인하여 현세에 안온하게 되고, 뒤에 善處에 태어나 道로써 즐거움을 얻는다”319)≪法華經≫藥草喩品 5.라고 한 바와 같이, 佛法을 들음으로 인해 직접 이 몸이 얻는 이익을 가리키는 것이다. 석가로부터 직접 불법을 들을 수 없는 후세에는 석가가 남긴 경전을 믿고 이를 독송하며, 또는 경전의 요체를 집약한 眞言을 외움으로써 얻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현실적으로 현세에서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은 佛·法·僧 3寶의 상호작용이다. 그 중에서도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는 승려는 영험을 나타내는 사람이라 믿었고 消病·延命을 위해 출가하는 예도 허다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념은 형상화됨으로써 현실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고려시대 불교신앙이 의례화됨에 따라서 同信仰樣相의 보급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불교의 토착화에 유효한 작용을 하였던 신앙의 형상화도 지나치면 세속화, 탈종교화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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