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3. 불교행사의 성행
  • 5) 향도조직
  • (1) 향도의 기원

(1) 향도의 기원

 고려시대 불교는 당시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종교이념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백성들은 대부분 불교를 중심으로 신앙활동을 영위하였다. 신앙활동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단조직을 통하여 전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불사를 위한 비용을 한 개인이 전담하여 조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집단을 결성하여 함께 부담을 나누었다. 향도는 이러한 불교신앙과 관련한 행위를 함께 하는 집단 가운데 대표적인 존재였다.

 향도문제는 불교신앙이 지방사회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파악하는데, 또 지방사회의 편제방식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향도문제는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는데, 그 접근 방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414)김필동,<삼국∼고려시대의 香徒와 契의 기원>(≪한국전통사회의 구조와 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6). 계와의 관계 또는 계의 기원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415)李睟光,≪芝峰類說≫권 2.
李圭景,<香徒辨證說>(≪五洲衍文長箋散稿≫권 36).
金庠基,≪高麗時代史≫(서울大出版部, 1985), 782∼784쪽.
白南雲,<朝鮮契의 社會史的 考察>(≪現代評論≫, 1927년 7월).
김필동, 위의 글.
이러한 이해는 조선 중기 李睟光 이래로 최근까지 계승되고 있다. 둘째는 특정 목적을 위해 조직된 불교의 신앙결사라는 시각에서 연구하는 것이며,416)金文經,<三國·新羅時代의 佛敎信仰結社>(≪史學志≫10, 1976). 또 하나는 향촌공동체 또는 촌락구조의 해명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417)李泰鎭,<醴泉 開心寺 石塔記의 分析―高麗前期 香徒의 一例―>(≪歷史學報≫53·54, 1972;≪韓國社會史硏究≫, 知識産業社, 1986).
蔡雄錫,<高麗時代 香徒의 사회적 성격과 변화>(≪國史館論叢≫2, 1989).
사회구조와의 관련양상을 중심으로 향도의 사회적 성격을 살핀 경우이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의 결과로 향도의 실상에 대한 일정한 이해체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즉 향도는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갖는 자발적인 단체로서, 당시의 향촌사회구조와 일정한 관련을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향도는 고려시기에 집중적으로 그 존재가 나타나지만, 고려 이전 시기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향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진평왕 31년(609)의 金庾信의 龍華香徒에 관한 것이다.418)≪三國史記≫권 41, 列傳 1, 金庾信. 그 이후에도 향도에 관한 기록들은 자주 보여져 거의 전국적으로 행하여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지역에서도 향도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419)<癸酉銘三尊千佛碑銘>(≪韓國金石遺文≫, 一志社, 1981), 249∼250쪽. 초기의 향도조직은 주로 불교신앙결사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유신의 용화향도라든가 혹은 異次頓 무덤의 禮佛香徒는420)≪三國遺事≫권 3, 興法 2, 原宗興法 厭髑滅身. 그러한 신앙결사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불상·범종·석탑·사찰 등의 조성에 향도가 참여하는 경우도 찾아진다. 이들 조직은 대부분 승려와 일반 신도로 이루어졌으며, 20여 명의 소규모에서부터 3천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사례도 있어 규모상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고려 이전의 향도조직은 내용상 불교신앙조직이기는 하지만 산신신앙과 같은 종래의 무격적이고 주술적인 토착신앙요소를 포함하면서, 기존의 종교적·사회적인 기능들을 대신하는 측면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김유신의 郎徒가 용화향도로 불리고 있는 사실에서 화랑도와 미륵신앙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향도가 기존의 종교신앙을 포함하는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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