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3. 불교행사의 성행
  • 5) 향도조직
  • (3) 고려 후기 향도의 변화

(3) 고려 후기 향도의 변화

 고려 후기에 향촌사회구조가 변화하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바뀜에 따라, 또 백성들의 사회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향도는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보였다. 향도의 규모나 구성원의 수, 활동 내용 등에서 고려 전기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향도가 변화하는 단초적인 모습은 12세기의 만불향도에서 찾아지고 있다. 만불향도의 활동을 금지한 것은 이 시기에 향도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 후기의 변화로는, 우선 전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서 중앙의 고관이 그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찾아지며,437)<申甫純墓誌銘>(≪韓國金石文追補≫, 亞細亞文化社, 1968). 여성이나 향촌의 小民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보인다.438)<至大四年銘鐘>(≪韓國金石遺文≫).
≪高麗史≫권 85, 志 39, 刑法 2, 禁令 충숙왕 후 8년 5월.
李 穡,≪牧隱詩藁≫권 35.
≪太祖實錄≫권 15, 태조 7년 12월 신미.
이것은 향도를 구성하는 성원이 고려 전기와는 달리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향도의 조직도 수백, 수천의 대규모는 거의 보이지 않고 축소되어 적게는 7∼9명, 많아야 100여 명이 참여하는 규모였다.439)蔡雄錫, 앞의 글.

 향도 구성원의 변화는 또 향도가 수행하는 활동내용의 변화도 초래하였다. 향도가 주관하고 참여하는 활동 내용이 종래에는 사찰·불상·석탑·범종의 조성과 같은 순수 불사에 치중되었던 데 비해, 후기에는 그 비율이 줄어들고 대신 念佛會나 會飮·喪葬扶助 등 무속적이거나 공동체적 생활의례가 가미되고 있었다.440)蔡雄錫, 위의 글. 즉 불교신앙적 요소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공동체적 관계에서 기능하는 사례들이 보이고 있다.

 이같은 고려 후기 향도조직의 변화는 조선 전기에 이르면 더욱 가속화되었다. 즉 여말선초의 향도는, 첫째 불교신앙 결사의 전통을 이은 순수 신앙조직의 변형된 모습, 둘째 자연촌 중심의 공동체적인 유제를 계승한 소위 淫祀·祀神香徒契, 셋째 이와 비슷하면서도 洞隣契로서의 상호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香徒契,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정한 정착처가 없이 公役과 잡무에 동원되고 사역되는 遊閑輩들의 조직으로 다양하게 변질되어 갔다.441)그러나 이러한 네 계열의 성격은 엄밀한 의미에서 확연한 구분이 있었다기 보다는 중첩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향도에 관해서는 李海濬,<조선시대 향도와 촌계류>(≪역사민속학≫창간호, 역사민속학회, 1991) 참조.

<李海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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