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개국과 함께 여러 가지 새로운 문물·제도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천문제도의 경우도 그런 경향이 아주 뚜렷하다.≪高麗史≫天文志에 밝혀 있는 것처럼 고려는 국초부터 천문기관을 太卜監과 太史局의 둘로 나눠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관점에서는 천문과 曆數는 태복감이 담당하고, 측후와 漏刻은 태사국이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천문기관을 둘로 나눠 놓는 방식이나 그 이름은 당의 제도를 참고했던 것이다.≪三國史記≫에 의하면 고대사회의 천문기관으로는 통일신라가 8세기 초에 漏刻典을 둔 경우밖에 분명한 기록이 없다. 그 전의 삼국 모두에 천문기관이 있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분명한 기록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 초기에 이와 같이 분명하게 천문기관으로 두 기구를 설치한 것은 고려 초기의 제도 발전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사≫가 말하는「國初」가 정확히 언제를 가리킨 것인지 단언할 수 없지만, 광종(949∼975) 때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늦어도 성종(981∼997)때에는 분명히 이런 제도가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시작된 두 천문기관은 그 후 이름을 바꾸면서 인원을 확충해 가는 변화를 겪고, 고려 후기에는 두 기관이 하나로 통합되어 조선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천문기관 구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문종 때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국초에 태복감으로 시작되었던 기관은 현종 14년(1023) 이미 司天臺로 이름이 바뀐 다음 문종대에 계승되었는데,≪고려사≫백관지 書雲觀條에 따르면 사천대와 태사국의 품관 구성은 다음과 같다.

사천대：判事(정3품) 1명, 監(종3품) 1명, 少監(종4품) 2명, 春官正·夏官正·秋官正·冬官正(종5품) 각 1명, 丞(종6품) 2명, 注簿(종7품) 2명, 卜正·卜博士(종9품) 각 1명 태사국：判事·知事·令(종5품) 각 1명, 丞(종7품) 1명, 靈臺郎(정8품) 2명, 保章正(종8품) 1명, 拏壺正(종8품) 2명, 司辰(정9품) 2명, 司脣(종9품) 2명, 監候(종9품) 2명

　이들 품관 아래에는 물론 많은 수의 吏隷가 부속되어 있었을 것이나 그 인원 등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이들 품계를 비교해 보면 분명하게 들어나는 것은 시계 등을 담당하는 것보다는 천문을 보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자 리가 훨씬 중요시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당시 천체의 관측이 어떤 의미에서 중시되었던가를 웅변해 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천문관이 고려 초기에 어떻게 양성되었고 또 어떻게 이들 기관에 채 용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광종 9년(958) 시작된 과거제도에는 처음부터 雜科가 있었는데, 첫 과거에서의 합격자는 進士 2명, 明經 3명, 卜業 2명이었고, 그 후의 과거에도 복업 합격자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바로 사천대의 말단 품관이었던 복정과 복박사(종9품)로 발탁될 자격을 시험본 것이었다.

　물론 이들 과거 합격자의 실질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려사≫에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과거의 일부로 잡과가 실시된 목종 원년(998)까지 복업에 합격한 사람은 겨우 6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복업을 포함한 잡과는 목종 원년 이후에는 정식 과거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인종 14년(1136)에 공포된 잡과 각 분야의 시험과목 가운데에 복업은 들어 있지 않은 점이 이상하다. 의학·지리학분야에 대한 시험 내역이 밝혀져 있으면서도, 천문학 또는 복업 등에 대한 실명은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고려 초의 교육기관에서 천문학교육이 실시되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 다. 성종 11년(992) 설치된 國子監에도 천문학교육은 포함되지 않았고, 11세기 이후 극성하기 시작한 私學에서도 천문학교육을 실시한 것으로는 보이 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천문학이란 특히 왕실 또는 국가의 명운을 예측하는 중요한 분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천문학교육은 천문 담당자와 담당기관 에 의해 내밀하게 실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