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Ⅱ. 문화
  • 1. 과학과 기술
  • 1) 천문 역산
  • (3) 역법의 발전

(3) 역법의 발전

 고려시대의 역법에 대해서는≪고려사≫曆志 첫마디에 대단히 비관적인 평가가 나와 있다.

고려는 曆을 따로 만들지 못한 채 당의 宣明曆을 계속해 썼다. 당에서 선명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長慶 壬寅年(822)으로부터 고려 태조가 건국한 때(918)까지 벌써 백년이 지나는 사이에 역법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당나라도 이미 역법을 고쳤고, 그 후 중국에서는 22회나 개정하였지만 고려는 여전히 선명력을 사용하였다(≪高麗史≫권 50, 志 4, 曆 1).

 그러나 400년 동안 낡은 당의 역법만을 썼고, 고려는 아무 역법도 스스로 개발하지 못한 채였다는 조선 초 학자들의 위와 같은 평가는 잘못이다. 그들은 조선 초 세종 때에 역법이 발달했던 결과로<七政算>을 완성했다는 성과 때문에 고려 때의 성과를 과소 평가했을 것이다. 또 전반적으로 고려시대를 과소 평가하려는 당시의 정치적 입장에서 기인했던 것일 뿐, 이 평가는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선 당 이후 송에 걸쳐 22회의 역법 개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과학적인 역법의 발달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원의 授時曆이 나오기까지 당에서 송에 걸쳐 이름 붙여졌던 수많은 새 역법은 모두 그 전의 것에 이름만을 바꿔 붙인 것이었다. 즉 정치적 목적에서 실행되었던 受命改制를 내세우기 위한 이름만의 새 역법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고려의 역학자들은 초기에 이미 중국의 역법을 뛰어 넘어 고려에 맞는 새 역법을 나름대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인 몇 가지 증거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우선 당의 선명력 이후에도 중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역법이 전해 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우선 태조 16년(933)에 後唐의 사신이 와서 태조의 책봉과 함께 역을 전했다는 기록을 비롯하여, 중국 五代의 각국은 다투어 고려와 교섭했고 고려 왕들은 중국 왕조들의 책봉을 받았다. 이 책봉과 함께 당시 중국의 역법이 전해졌음은 물론이다. 또 성종 13년(994)에는 거란의 역법을 채택한 흔적도 보이며, 현종 13년(1022)에는 송에서 돌아온 사신이 乾興曆을 가져온 기록도 보인다.

 고려 초 역법의 발달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는 고려에서 11세기 초부터 일식과 월식 예보를 독자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동양의 전통사회에서의 역법은 곧 천문계산법이었고, 따라서 역법의 독자적 발달 없이는 일식과 월식의 독자적 예보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고려에서 일식 예보를 하지 못했다고 처음 문제가 된 기록은 문종 원년(1047)에 발견된다. 즉 늦어도 문종 때에는 고려 천문학자들이 독자적인 일식의 예보기술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기의 고려 역법이 독자적으로 발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한가지 증거로는 당시 고려의 日辰 표시가 중국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과 고려의 일진이 틀리기 시작하는 것은 현종 13년부터로 밝혀져 있는데,336)震檀學會,≪韓國史-年表-≫(乙酉文化社, 1959)의 朔閠表 참조. 그 해 2일 1일이 고려에서는 경자일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신축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고려의 역법이 그 해 1월을 29일로 계산한 데 반해, 중국의 역법이 1월을 30일로 계산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한 달 뒤에는 다시 일진이 맞아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특히 11세기에 아주 많았다는 사실은 고려의 독자적인 역 계산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337)고려 일대를 통해 이런 차이가 있었던 해는 1022, 1025, 1032, 1040, 1041, 1049, 1055, 1059, 1065, 1079, 1096, 1114, 1118, 1147∼1149, 1252, 1282, 1287, 1306, 1332년 등이다.

 고려 초에 역법이 독자적인 발달을 이룩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방증은 일본에서 역법의 개량을 위해 송이나 또는 고려에서 역법을 배워 올 것을 문종 2년(1048;日本 永承 3)에 논의했다는 일본측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338)Nakayama Shigeru, A History of Japanese Astronomy(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9), 72∼73쪽.

 문종 6년에 제작된 다음의 다섯 가지 역은 바로 이와 같은 역법의 발달에 기인한 고려 천문역학자들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金成澤의 十精曆, 李仁顯의 七曜曆, 韓爲行의 見行曆, 梁元虎의 遁甲曆, 金正의 太一曆 등이다. 그런데 이름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일반적인 역법이라기 보다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주로 罹災를 위한 특수한 역법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미신적인 역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이런 역법을 개발해 냈다는 사실로부터 당시의 역법 발달의 한 단면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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