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Ⅱ. 문화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1) 건축활동

 태조 2년(919)에 고려왕실은 도읍을 개성으로 정하고 곧 滿月臺에 궁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도성 축조와 아울러 도성 내에 法王寺·慈雲寺·王輪寺·文殊寺 및 圓通寺 등 10대 사찰을 연달아 창건하여 국가의 安泰鎭護를 기원하였다. 태조 4년에는 도성 서북변에 日月寺를 창건하고, 8년에는 궁궐 가까이에 興國寺를 창건하는 등 국초에 이미 도읍을 일대 사찰도시로 만들었다. 그 후에도 견훤에게 인질로 보내어졌다가 살해된 아우 王信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태조 13년에 安和禪院을 세웠고, 그 밖에도 많은 사찰의 창건·중수사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빈번한 사찰 창건에 따른 폐단을 깨닫고, 후손에 남긴「訓要十條」가운데서 첫째로 국가의 대업이 여러 부처의 호위와 지적에 힘입은 것이므로 불교를 신봉·보호할 것을 명하고, 둘째로 사찰을 함부로 창건하는 것은 지덕을 손상하니 우려된다고 하여 이를 삼가할 것을 명했다.

 태조의「훈요 10조」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도 사찰 창건의 기운은 시들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었다. 광종 2년(951)에는 태조의 願堂으로 도성 남쪽에 大奉恩寺를 창건하였고, 도성 동쪽 교외에는 죽은 모후 劉氏의 원당으로 佛日寺를 창건하였다. 또 광종 5년에는 태조비 吳氏의 추복을 위하여 崇善寺를 창건하였다. 그 뒤에도 광종 14년에 歸法寺를, 19년에는 弘化寺·遊岩寺·三郎寺 등을 연달아 창건하는 등 創寺활동이 활발하였다.

 성종 때에는 왕에 의한 창사활동은 얼마간 주춤하였으나, 성종 4년(985)에 집을 희사하여 사찰로 만드는 것을 금한 사실이 있는 것을 보면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집을 사찰로 희사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성종 2년에 任老成이 송에서 太廟堂圖·社稷壇圖 및 文宣王廟圖 등을 가져오자 이것을 본받아 고려왕조에서는 처음으로 太廟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목종 때에 들어서자 그 동안 주춤하던 창사활동이 다시 활발해져서 목종 원년(998)에는 雲興寺를 거의 일신하는 대중창공사를 실시하여 이를 定光寺라고 이름을 고쳤다. 또 목종 2년에는 崇敎寺를 창건하였고, 10년에는 眞觀寺에 9층탑을 건립하기도 했다. 현종 때에도 사찰의 중수와 창건이 계속되어 현종 3년(1012)에는 경주의 朝遊宮을 헐고 그 목재를 사용하여 皇龍寺 9층탑을 중수하였으며, 그 해 겨울에는 도성 내에 重光寺를 창건하기 시작하였다. 현종 9년에는 玄化寺를 창건하여 그의 부모의 원당을 삼았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사찰 건립으로 민폐가 극심하다는 간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종 18년에는 중광사의 건립을 계속하고, 새로이 도성 내에 慧日寺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현종은 사찰 건립 이외에도 거란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개성의 궁궐을 중수하고, 외적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개성에 처음으로 羅城을 축조하였다.

 이 시기에는 왕에 의한 창사활동 이외에도 고승이나 귀족들에 의한 사찰 건립이 있었다. 즉 광종 24년(973)에 水玄禪師에 의한 白岩禪院(淸平寺)의 창건과 현종 17년(1028)의 探密禪師에 의한 安心寺 창건, 정종 8년(1042)의 탐밀선사와 宏廓禪師에 의한 普賢寺 창건과 문종때의 李子洑에 의한 甘露寺 창건, 金富軾에 의한 觀潤寺 창건과 현종 때의 姜邯贊에 의한 興國寺 석탑 건립 등이 있었다.

 정종 이후에는 창사활동이 비교적 적어졌으며 이미 건립된 사찰이나 궁궐의 중수사업과 기존 사찰 속에 법당을 새로 건립하는 등의 활동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정종 9년에는 宣和寺와 松林寺가 창건되었고, 문종 10년(1056)에는 興王寺를 짓기 시작하여 21년에 완공시키고, 32년에 여기에 금탑을 건립하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선종 6년(1089)에는 왕후에 의해 도성 서쪽에 國淸寺가 창건되었고, 선종 10년에는 도성 동쪽에 弘護寺가 창건되었다. 현종 원년(1095)에는 황룡사 9층탑을 수리하고, 숙종 2년(1097)에는 國淸寺를 완공하였다. 숙종 6년에는 南京開創都監을 설치하고 9년에는 남경을 한양에 정하여 여러 궁궐 건물을 건립하였다. 예종 10년(1115)에는 僧 曇徵에 의해 普門寺가 창건되었다.

 인종 7년(1129)에는 서경에 새 궁궐인 太和宮을 낙성시키고, 9년에는 서경 林原에 궁궐을 짓는 등 서경의 궁궐 정비에 힘썼다. 의종 11년(1157)에는 개성 궁궐 동쪽에 養怡亭을 건립하였는데, 그 지붕을 청자기와로 잇고, 그 밖에도 많은 민가를 철거하여 太平亭을 건립하고, 12년에는 白川에 별궁인 重興闕을 새로 짓는 등 궁궐 건립이 많았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전기의 건축활동으로는 그 초기의 궁궐 건립·정비와 10대 사찰 창건에 이어, 점차 그 빈도는 적어지지만 거의 전 시기를 통해 사찰창건이나 법당 건립이 성행하였다. 아울러 북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곽과 방루 등의 축조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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