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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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목칠공예

(3) 목칠공예

 木漆工藝品으로 고려시대 유물이 남아있는 예는 매우 적어서 그 전모를 알 길이 없으나 통일신라시대의 목칠공예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경주 雁鴨池 출토품으로 알 수 있다.

 고려의 목칠은 貝殼(소라·진주조개·전복), 玳瑁(龜甲), 銅을 입사하는 螺鈿漆器로 대표된다. 나전칠기는 木心苧被의 칠기에 소라나 전복과 은·동선을 嵌入하여 문양을 만든 것이다. 인종 원년(1123) 고려를 다녀간 徐兢이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螺鈿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만하다”600)徐兢,≪高麗圖經≫권 23, 雜俗 2, 土産.고 평가할 정도로 인종 초 나전칠기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工部에 소속된 관서로서 供造署에서는 어용품을 중심으로 세공기물을 제작했고 都校署에서는 궁중 및 중앙관서에 쓰이는 세공품을 제작했다. 11세기 후반 문종년간에 작성된 別賜명단에 보이는 小木匠·彫刻匠·螺鈿匠·珠簾匠·磨匠 등으로부터 분업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긍이≪고려도경≫에서 “고려의 토속은 여전히 그러하다. 만듬새를 보면 예스럽게 소박함이 자못 사랑스럽다”라고 하였듯이 고려사회의 일반적인 기술은 古風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전·후기를 통틀어 10여 점 정도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黑漆草木水禽圖螺鈿描金香函과 黑漆立菊螺鈿玳瑁函黑漆母子盒, 黑漆菊唐草螺鈿子盒, 黑漆菊唐草螺鈿油壺를 비롯하여 日本의 東京博物館의 立菊螺鈿經箱 등이다.

 이들을 살펴보면 器形으로는 모자함, 유호 등의 화장품구와 소형의 有蓋箱子와 經函 등이며, 문양은 초목수금도나 당초문·국화문으로 전면을 施紋하고 있다. 시문에 있어서도 周緣의 테두리는 은이나 동을 꼬아 縒線으로 하고, 伏紅玳瑁片을 써서 花心을 만들었다.

 이들 작품 중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것은 草木水禽函인데, 그 이외의 것들은 철화청자에 많이 나오는 밀집된 당초문과 국화문으로 모든 공간을 덮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초목수금함은 원래 29×19×11. 5cm(높이)의 뚜껑있는 함으로 紵心漆器이며 측면에 나전으로 된 버들과 갈대를 배치하고 수면과 하늘에는 물새를 날게 하고 있으며 그 구도로 보아 象嵌靑瓷와 통하는 12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601)金元龍은 앞의 책, 296쪽에서 12세기 초로 보고 있다.

<尹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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