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고려 후기는 무신정권과 몽고간섭의 시기를 거치면서 정치기강이 문란하여져 인사행정도 난맥상을 드러낸 시기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무엇보다≪高麗史≫권 73, 選擧志 서문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고려 전기에 조리있고 질서 정연했던 選取와 銓注의 법이, “權臣이 사사롭게 政房을 설치한 때로부터 인사행정이 뇌물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銓法이 크게 무너지고 科目에 의한 取士도 또한 따라서 범람해져서, 이에 黑冊의 비방과 粉紅의 비난이 일시에 전파되어 고려의 業은 드디어 쇠하여졌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보이는 정방은 잘 알려진 대로 武人執政인 崔瑀(怡)가 고종 12년(1225)에 인사의 처리를 위하여 자기의 私邸에 설치한 기구였는데, 그 이후로 인사가 뇌물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전법이 크게 무너져 ‘흑책의 비방’이 일어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흑책’이란 아동들이 두꺼운 종이에 검게 칠하고 기름을 먹여 글씨쓰는 연습을 하던 것인데, 인사의 批目이 내려오면 用事者들이 다투어 서로 지우고 고쳐 써넣어 朱色과 黑色을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가리켜 ‘黑冊政事’라 일컬은 데서0053)≪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銓注 選法 충숙왕 16년 9월. 나온 말이었다. 인사행정의 문란상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科擧制가 문란해졌다는 것인데, 그로 말미암아 ‘紛紅의 비난(紛紅之誚)’이 있었다 한다. ‘분홍의 비난’이란 과거의 主試者가 합격자를 공정하게 선발하지 않고 대부분 勢家의 젖비린내 나는 아동들을 뽑은 사실을 두고 당시인들이 ‘紛紅牓’이라 기롱한 데 따른 것으로, 그것은 아동들이 분홍옷 입기를 좋아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전하고 있다.0054)≪高麗史節要≫권 32, 신우 11년 3월. 가장 중요한 관리 등용방식의 하나였던 과거제 운영의 난맥상을 지적한 예로 이해된다.

 이 과거제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전기 이래의 관리 등용방식 이외에도 후기에는 몇 가지 비정상적인 방법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인사행정은 한층 어지러워졌으며, 그 결과로 표면에 드러난 현상이 관원 수의 대폭적인 증가였다. 이 점은≪고려사≫권 76, 百官志 서문에서도 지적되고 있지만, 특히 공양왕 원년 12월의 郎舍 具成祐의 다음과 같은 상소를 통해 그 실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名器와 爵祿은 賢人을 양성하고 士를 대우하기 위한 것으로써 관직에는 스스로 定制가 있고 銓選에도 또한 成法이 있습니다. 우리 태조께서 삼한을 통일한 초기에 ‘省五 樞七’을 설치하였음은 國人이 傳聞해 온 바이온데 元을 섬긴 이후로부터 省樞의 合坐가 시작되고 添設職이 배로 많아져서 동·서 각품 모두 繁冗하지 않음이 없게 되었습니다. 불행히 갑인년(공민왕 23 ; 1374) 이래로 奸臣이 擅政하여 蒼赤·田宅을 뇌물로 바치면 사람의 어짐과 不肖함을 논하지 않고 省樞로 발탁하니, 뇌물 바치는 자는 많고 관직의 수가 적으므로 마침내 商議까지 칭하여 그 수가 70∼80에 이르렀습니다. 성추가 된 자는 비록 합좌라는 명목은 있으나 나그네같이 進退하여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이에 명기는 混淆되고 官爵은 문란해졌습니다(≪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銓注 選法 공양왕 원년 12월 門下府郎舍 具成祐等 上䟽).

 본래 재추(성추)는 ‘宰(省)五·樞七’이라 하여 12職 17명이 정원이었다. 그런데 그 수가 고려말에는 70∼80명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최고직인 재추에 한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하의 동·서반 각 품계에도 첨설직이 설치되어 원래 정원 수의 2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고려 후기의 관제 문란을 주로 관리 등용제도의 측면에서 좀더 깊이있게 추구하여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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