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1) 개혁정치의 추진

 원간섭기 이후 고려사회는 외세 종속구조가 오래 지속됨으로써 사회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이 시기 사회모순은 12세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던 고려사회 본래의 내적모순과 몽고와의 전쟁, 원의 간섭으로 말미암은 외적모순이 중첩된 형태였다. 국가 재정난, 민의 궁핍화, 파행적 정치운영 등은 당시 사회모순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국가 재정은 元의 요구가 추가됨으로써 그 수요가 늘어난 반면, 토지겸병의 확대로 말미암아 국가 收租地는 줄어 재원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0340)朴鍾進,<忠宣王代의 財政改革策과 그 性格>(≪韓國史論≫9, 서울大, 1983), 54∼69쪽. 사회모순의 심화는 민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였다. 그래서 민은 독립적 생활기반을 잃고 국외로 유망하던가, 아니면 지배세력의 농장에 투탁하여 살아가고 있었다.0341)고려 후기 민의 유망에 대해서는 梁元錫,<麗末의 流民問題 -특히 對蒙관계를 중심으로->(≪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一潮閣, 1956) 및 김순자,<원간섭기 민의 동향>(≪역사와 현실≫7, 한국역사연구회, 1992) 참조. 뿐만 아니라 왕위를 유지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측근정치가0342)원간섭기 정치의 한 형태를 측근정치로 이해한 연구로는 다음이 참고된다.
金光哲,<高麗 忠烈王代 政治勢力의 動向>(≪論文集≫7­1, 昌原大, 1985).
―――,<嬖幸集團의 形成과 世族>(≪高麗後期 世族層硏究≫, 東亞大 出版部, 1991).
李益柱,<高麗 忠烈王代의 政治狀況과 政治勢力의 性格>(≪韓國史論≫18, 서울大, 1988).
鄭希仙,<高麗 忠肅王代 政治勢力의 性格>(≪史學硏究≫42, 1990).
朴宰佑,<高麗 忠宣王代 政治運營과 政治勢力 動向>(≪韓國史論≫29, 서울大, 1993).
출현함으로써 권력은 측근세력 등 권력층에게 독점되어 정치운영은 파행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사회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지배세력, 특히 권력층은 오히려 이러한 모순구조에 편승하여 더 많은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배세력의 일부는 국가 재정난과 심각한 민생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지배세력은 上書의 형식을 빌어 현실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으며, 정부는 국왕의 교서 발표나 정부기관의 정책 제시를 통해 당시 현안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국왕의 즉위초나 정치변동기에 발표된 교서와 개혁기구가 제시한 ‘狀’, 또는 ‘榜’이 있다. 충선왕 즉위년(충렬왕 24 ; 1298)과 복위년(1308), 충숙왕 5년(1318)·12년, 공민왕 원년(1352)·5년·12년·20년의 교서 등 8개의 개혁교서와 충목왕 3년(1347)의 ‘整理都監狀’과 공민왕 15년(1366) 5월의 ‘田民推整都監榜’이 그것이다. 지배세력이 개인 자격으로 제출한 개혁안은 충렬왕 22년(1296) 洪子藩의 ‘便民十八事’, 충목왕 즉위년(1344) 5월 李齊賢의 ‘都堂上書’, 공민왕 원년 李穡의 ‘陳時務書’, 공민왕 11년 白文寶의 ‘箚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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