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고려 후기에는 중앙의 권력자가 아니면서 부를 축적한 자들이 등장하였다. ‘豪强兩班’·‘富戶’·‘富民’·‘富實之家’ 등으로 표현되는 이들은 원간섭기에 원을 배경으로 탈점·농업경영·유통경제·고리대 등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富戶層이다. 이들 부호층의 성장 가능성과 재산축적 과정은 농업생산력 발달과 유통구조의 발달 추세와 궤를 같이 하였다.1288)洪榮義,<高麗後期 富戶層의 存在形態>(≪擇窩許善道先生停年紀念 韓國史學論叢≫, 一潮閣, 1992).

 이들 외에 지방사회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品官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부를 기반으로 고리대를 통해 토지를 탈점하거나, 유통경제에 적극 참여하여 경제적 기반을 확대시켜 나갔다. 국가재정 보충을 위해 충렬왕 원년(1275)에 처음 실시된 納粟補官制는 이들 부민들이 신분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합법적 통로였다. 지방사회의 정치·경제적 실력자는 대개 전직관원이나 검교·동정직자인 ‘有職居外者’와 향리였다. 이들 유력자는 고려 후기 사회경제적 변동과정에서 농업·상업·고리대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바탕으로 신분을 향상시켰다.1289)朴恩卿,<高麗後期 地方品官勢力에 관한 硏究>(≪韓國史硏究≫44, 1988).

 상인들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납속보관제 등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였다. 원간섭기에 왕실이나 권력층이 국내상업과 대외무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들과 결탁된 어용상인들의 정치·경제력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상인들 사이에도 분화가 일어났다. 충렬왕 15년(1289) 요동지역에 기근이 들어 군신들에게 쌀을 거둘 때 부상들에게도 대·중·소호로 나누어 각각 3석·2석·1석씩을 징수하였다. 부상들은 5∼8품의 관료와 동일한 과렴의 대상이었다. 상인들은 첨설직 등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였으며, 천호직(종2품∼4품)을 받거나 밀직부사(정3품)까지 승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왕실이나 권력층과 결탁되어 있는 상인들은 반대급부로 관직을 받고 이들의 측근세력이 되었다. 南宮信·林檜·尹莊·林信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상인들은 권력층과 혼인 등의 인적 관계를 맺으면서 신분향상을 하기도 하였다.1290)홍희유, 앞의 책, 103∼104쪽.
金東哲, 앞의 글, 233∼237쪽.
안병우, 앞의 글(1994b), 147∼152쪽.
李貞信, 앞의 글, 130∼132쪽.

 상인·수공업자·노비·향리·잡류 등의 관직진출이 늘어나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1291)≪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職制 신우 14년 8월.
≪高麗史節要≫권 32, 신우 9년 2월.
신분제의 동요는 사치풍조를 조장하여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사치풍조의 만연에 대해, 공양왕 3년(1391) 중랑장 房士良은 거리에는 왕의 옷을 입고 왕비의 장식을 한 노비가 가득하다고 하면서 工商賤隷가 비단옷을 입고 金銀珠玉으로 장식하는 것을 일체 금하여 사치풍조를 막고 신분질서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1292)≪高麗史≫권 85, 志 35, 刑法 5, 禁令 공양왕 3년 3월. 고려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에 의한 빈부의 격차로 신분분화가 심화되어 갔다. 13세기에 林椿이 쓴≪孔方傳≫에서는 동전이 생겨난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고려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려 후기 신분제 변동은 무신정권기와 원간섭기라는 정치적 변동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이란 경제적 변동의 산물이었다.1293)홍희유, 앞의 책, 101∼104쪽.
朴菖熙,<高麗後期 身分制 變動>(≪國史館論叢≫4, 1989).

<金東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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