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1) 몽고족의 흥기와 여·몽관계의 성립
  • (2) 몽고군의 고려 입경

(2) 몽고군의 고려 입경

 고려·몽고 양국관계의 성립은 고종 5년(1218) 이후의 일이지만 그러나 양국이 처음으로 접촉하였던 것은 이로부터 여러 해를 거슬러 올라간다. 희종 7년(1211) 몽고는 금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는데, 이 때 금나라에 파견하였던 10명의 고려 사신이 몽고군의 습격으로 몰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금나라에 파견된 사신 일행이 몽고군에 의하여 몰살되어 유골만 돌아온 이 최초의 대몽접촉 경험은 이후 몽고군의 극렬한 정복전쟁 확대와 함께 고려측에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몽고의 발흥으로 인하여 국제관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동북의 만주지역에서는 지배세력 내부의 해체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금나라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거란족에 의해 주도되었다.

 거란인 耶律留哥는 몽고가 금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던 1211년 隆安(吉林省 農安縣)에서 군사를 일으켜 遼王을 자칭하고 咸平(開原)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나 곧 부장 耶律斯布와 충돌을 일으켜 야율유가가 몽고에 투항해 버리고 야율사포가 그를 대신하여 거란 部衆을 이끌게 된다. 그는 澄州(만주 海城)로 거점을 옮겨 大遼收國을 세웠으나(1216) 불과 70여 일만에 피살되고 乞奴 등이 이를 지휘하게 되었다. 이들은 동년 야율유가에 의해 인도된 몽고군의 공격을 받고 패주, 다시 開州(鳳凰城)에서 금나라 군대와 충돌하였다가 고려 영내로 들어오게 된다.

 거란족의 갑작스러운 入境 사태에 직면한 고려정부는 급히 3군을 편성, 13領軍과 神騎軍을 파견하여 이를 방어케 하였으니 이 때가 고종 3년(1216) 8월의 일이었다. 盧元純·吳應富·金就礪 등이 지휘하는 고려의 3군은 9월 초 청천강변 朝陽鎭에 당도하여 내려오는 적을 격파하고 이어 連州·昌州·龜州·延州·泰州 등 청천강 이북의 여러 지역에서 일단 적을 제압하였다. 그러나 적의 후속부대가 뒤이어 남진하여 12월에는 서해도 黃州가 도륙되고 개경 근교까지 출몰하였다. 이듬해 고종 4년, 지휘관이 교체되고 증원 재편된 고려의 5군은 경기의 여러 지역에서 거란족을 격파하였고 이어 원주·춘천 등지를 함락한 적을 추격하여 堤川의 朴達峴에서 격파시켜 거란족들을 동북면 이북의 여진지역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동년 연말 세력을 다시 결집한 거란족은 동북지방의 장성을 넘어 침략을 재개하여 이듬해 서북면으로 넘어와 횡행하였다. 이같은 거란족의 고려 침구로 인하여 당시 고려사회는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다.

 이에 고종 5년 9월, 고려정부는 수사공 趙冲으로 서북면원수를 삼고, 3군을 파견하였던 바 패퇴한 거란족들은 평양 동쪽의 강동성으로 몰려 들어가 버티기에 이르렀다. 거란족은 고려 영내를 횡행하는 동안 내부 분쟁 또는 전사 등으로 그 영솔자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당시 강동성의 지휘자는 喊舍였다. 몽고군이 돌연 고려의 영내에 출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의 일이었다.

 1214년 중도를 함락함으로써 중원정복의 1단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몽고는 1216년 제2단계 작전을 전개, 중국 동북부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이 때 요동지방은 금의 叛將 蒲鮮萬奴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수년 전 거란인 야율유가가 반란을 일으킬 때 이의 진압을 위해 정부로부터 파견되었으나 거란족에게 패퇴한 다음 東京(遼陽)으로 도주, 도리어 쇠퇴한 금에 반기를 들고 국호를「大眞」이라 하고 나라를 세웠던 자이다. 1216년 무칼리〔木華黎〕의 몽고군이 요서지방을 경략하고 이어 요동으로 진입하자 포선만노는 아들을 인질로 하여 일단 항복하였다. 몽고군이 요동반도의 여러 성을 공략한 다음 철수하자, 이듬해 여름 그는 자신의 휘하를 이끌고 그 거점을 멀리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만강 유역을 근거지로 다시 자립하였는 바 이것이 고려측 기록의「東眞」이다. 고종 5년(1218) 말, 고려에 들어온 몽고군은 동쪽으로 멀리 도망간 포선만노를 복속시키고 이어서 고려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哈眞과 札刺의 몽고군 1만은 거란 토벌을 구실삼아 동진의 군대 2만과 함께 고려의 동북면에 입경한 다음, 서북면 지역 猛州·順州·德州 등의 여러 성을 공격하면서 거란족이 웅거한 강동성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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