紅巾賊은 공민왕 8년(1359) 2월에 고려에 글을 보내 침입을 예고하였다.
生民이 오랫동안 蒙古族의 아래에서 시달림을 통분하게 여기어 義를 부르짖고 군사를 일으켜 中原을 회복하고 동으로는 齊魯(山東)를 넘고, 서로는 函秦(甘肅)에 들어갔으며 南으로는 閩廣(福建·廣東)을 지나갔고, 北으로는 幽燕(河北)에까지 모두 심복하였다. … 사졸로 하여금 백성을 괴롭히지 않게 할 것이니 귀화하는 백성은 안아주고 頑迷하게 반항하는 자는 처벌할 것이다(≪高麗史≫권 39, 世家 39, 공민왕 8년 2월 을유).
이처럼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여 은근히 장차 침입할 것을 암시하더니, 그 해 11월에 3,000여 명이 건너와 약탈함으로써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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