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2) 지눌의 사상
  • (2) 지눌의 생애

(2) 지눌의 생애

 의천은 왕족출신으로서 교종을 대표하여 선을 교에 흡수함으로써 선·교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이에 반하여 지눌은 서민 출신의 승려로서 스스로 고려 불교계의 문제를 안고 고심하며 수행하는 가운데 당시 침체되어 있던 선불교계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을 주축으로 해서 교를 수용하는 자세로 선·교대립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지눌은 스스로 끊임없이 수행에 힘쓴 진검한 구도자였으며, 후학들을 위해 선의 수행방법을 이론적으로 다룬 저술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저술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선사상뿐만 아니라 고려 중기의 불교계가 처했던 상황과 문제들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그가 선·교의 갈등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고려 초부터 제도화된 승려들의 국가고시인 승과제도는 지눌 당시는 물론이요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면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지눌은 9산선문의 하나인 闍崛山派 宗暉禪師 문하에 출가하여 24세 되던 해에 개경 普濟寺에서 열린 談禪法會에 참여하였다. 승려들의 등용문에 응시하기는 하였으나 그는 당시 승려들의 타락상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名利를 버리고 산림에 은거하여 定慧를 닦는 일에 힘쓰는 결사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는 당시 국가와 귀족들의 비호 아래 번창하던 불교가 점점 불교 본연의 출세간적 자세를 망각하고 세간적 명리에 탐닉하던 현상에 대한 일대 자각이었으며, 도시불교에서 산림불교, 국도 중심의 불교에서 지방불교, 국가불교에서 개인의 구도적 불교, 그리고 기복적 불교에서 수도적 불교로의 전향을 촉구하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러한 제안이 동료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기는 했으나 즉시 실현되지는 못하자 지눌은 홀로 개경을 떠나 昌平 淸源寺라는 절에서 수행을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중국 남종선의 제6조 慧能의 어록인≪六祖壇經≫을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는 체험을 했으며 그 후 그는 下柯山 普門寺로 옮겼다. 지눌은 唐의 李通玄長者가 지은≪華嚴論≫(新華嚴經論)을 읽는 가운데 화엄에도 선과 같이 단번에 자신의 佛性을 자각하는 頓悟의 길이 있음을 깨닫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가 입으로 전한 것은 敎요,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은 禪이며 부처의 말과 조사의 마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고 선교일치를 체험적으로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명종 18년(1188)에는 옛날 결사를 같이 서약했던 道伴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드디어 公山(지금의 팔공산) 居祖寺에서 정혜결사를 이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옛날 서약을 같이했던 도반들을 모아 결사를 시도해 보았으나 어떤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또 어떤 사람은 속세의 명리를 좇아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눌은 명종 20년 결사의 취지문을 작성하여 전국에 돌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기로 결단하였다. 이 때에 작성되어 배포된 선언문이 유명한≪勸修定慧結社文≫으로서 고려불교의 역사적 문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선언문을 작성할 당시 지눌의 나이는 32세였으나 그 안에는 이미 그의 중요한 사상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지눌의 정혜결사운동은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받아 동참자들이 모여들었으며 명종 27년에는 장소가 협소해져 전남 송광산의 吉祥寺라는 곳을 중수하여 장소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신종 3년(1200)에 중창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그 곳으로 옮기기까지 3년간 지눌은 지리산의 上無住庵에서 수행했으며, 그 곳에서 중국 看話禪의 대가인 大慧禪師(1089∼1163)의 어록을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선사들이 주고받는 짤막한 문답인 話頭를 參究하는 간화선은 지눌이 선을 수행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하였다. 희종 원년(1205)에는 9년간에 걸친 중창사업이 끝나고 희종으로부터 修禪社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정혜결사운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인근에 定慧社라는 이름의 사찰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정혜사 대신 수선사의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이다. 희종 6년 입적할 때까지 지눌은 수선사에서 학인을 지도하고 저술활동을 하는 등 고려 불교계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켰다.

 지눌의 저술로는 선 수행법의 요체를 설하는≪修心訣≫, 불성의 세계를 단도직입적으로 설하는≪眞心直說≫, 이통현의 화엄사상에 근거하여 화엄적 돈오의 길을 밝힌≪圓頓成佛論≫, 간화선의 방법과 의의를 밝힌≪看話決疑論≫, 그리고 당의 선사이자 화엄사상의 대가 圭峰宗密(780∼841)의 선사상의 요체를 담은≪法集別行錄≫을 요약하고 거기에 私記를 단≪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자가 지녀야 할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자상하게 다루고 있는≪誡初心學人文≫이 있다.

 지눌의 선사상은 심성론과 수행론으로 구분하여 고찰할 수 있다. 심성론은 인간의 참 자아이며 우주만물의 實相인 眞如·眞心 혹은 불성에 관한 설명으로서, 언어와 문자를 초월한 진리의 세계를 지눌이 수행자를 위해 방편으로 설한 설법에 기초하고 있다. 수행론은 이와 같은 진리의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깨달아 들어가며 어떻게 닦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논하는 실천론을 의미한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진리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이것을 주관적으로 실현하는 길을 말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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