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2) 지눌의 사상
  • (3) 심성론

(3) 심성론

 지눌은 모든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인 불성을 진심이라 부른다. 진심이란 妄心, 즉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짓되고 미혹된 마음, 번뇌와 망상으로 더럽혀진 마음의 반대로서, 지눌에 의하면 이 진심을 깨닫고 회복하는 것이 선의 궁극적 목표이다. 그는 진심에는 眞如·佛性·法身·如來藏·主人公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나 진심의 본체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은 ‘空寂靈知之心’이라고 하였다. 공적영지야말로 진심이 어떠한 것인가 그 본질을 표현해 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진심은 우선 空寂한 세계다. 일체의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고 일체의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텅 비고 고요한 세계이다. 눈에 보이는 일체의 형상과 이름을 초월하고 일체의 差別相을 넘어선 절대평등의 세계인 것이다. 이것을 지눌은 ‘진심의 體’라 부른다.

 그러나 지눌에 의하면 진심은 이렇게 일체의 사물과 개념이 부정되는 공적한 세계일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또다시 일체의 名과 相이 되살아나는 가득 찬 세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먹고 자고 일하는 우리의 모든 일상적 활동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절대긍정의 세계이다. 지눌은 이것을 ‘진심의 用’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진심의 체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적 관념과 경험 일체가 부정되지만, 진심의 용에 있어서는 이 모든 것들이 집착없이 순수하게 진심의 妙用으로서 있는 그대로 긍정된다. 지눌은 진심의 체와 용을 또 다른 말로는 진심의 不變과 隨緣이라 부른다. 불변은 진심의 텅 빈 항구한 본체의 세계요, 수연은 조건에 따라 변하는 사물들의 역동적인 세계로서 진심의 묘한 작용이다. 따라서 지눌에 의하면 진심을 체득한 사람은 일체의 세상사를 초월하고 한가로우나 동시에 모든 일을 거침없이 처리하는 자유자재의 삶을 살 수 있다.

 공적한 진심의 체가 이와 같은 묘용과 수연의 역동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진심의 본체가 공적일 뿐만 아니라 靈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지란 공적의 세계가 죽은 물질의 세계와 같이 무감각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뚜렷하고 영묘한(靈) 의식과 앎(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앎을 매개로 하여 다양하게 변화하는 차별적 세계가 진심의 묘용으로서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다.

 지눌은 이와 같은 진실의 신비를 나타내기 위해 맑고 깨끗한 구슬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한 구슬이 있어 흠이 없이 깨끗한 것은 진심의 체인 공적에 해당한다. 그 구슬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맑기도 해서 주위의 다양한 사물들을 비출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진심의 영지이며, 맑은 구슬에 나타나는 여러 상들은 곧 진심의 묘용이요 수연인 것이다. 지눌은 진심의 체를 구성하고 있는 공적과 영지의 양면을 다시 체와 용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 경우의 용은 구슬에 반영되는 수시로 변하는 수연의 용과는 달리 불변하는 진심 그 자체의 용이라 하여 후자로부터 구별하고 있다. 전자는 인간의 본성인 불변하는 진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용이라 하여 自性用이라 부르며, 후자는 조건(緣)에 따라 항시 변하는 역동적인 용이라 하여 隨緣用이라 부른다. 이상과 같은 지눌의 심성론은 중국의 荷澤神會와 圭峯宗密의 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眞心直說≫과≪節要≫에 상세히 전개되고 있다.

 진심의 체가 지니고 있는 공적과 영지의 두 측면을 지눌은 또 다른 말로 定과 慧라 부른다. 이 정과 혜는 후천적인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서, 이것을 自性定慧라 부르며 수행을 통해서 얻는 隨相定慧로부터 구별하고 있다. 지눌에 의하면 정과 혜를 닦는 수행의 궁극 목표는 모든 인간이 갖추고 있는 자성정혜, 즉 ‘공적영지지심’을 발현시키는 데에 있다. 지눌이 이와 같이 진심의 체와 용에 대해서 상세히 밝힌 것은 결코 아무런 수행도 없이 다만 지적으로만 진리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미리부터 자기가 닦아서 이루어야 할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눌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즉 그의 심성론은 수행자들의 觀行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설한 것이지, 결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는 返照의 노력 없이 불법에 대한 지적 이해에 만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제 위와 같은 심성론을 기반으로 하여 선 수행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망심에 의해 가려진 자신의 본성인 진심을 회복하고 발현해 갈 수 있는가 하는 선 수행 내지 실천에 대한 지눌의 이론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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