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2) 지눌의 사상
  • (5) 간화선

(5) 간화선

 돈오점수는 지눌에 있어서 결코 선의 전부는 아니다. 지눌에 의하면 돈오점수의 길은 선과 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수행의 방법이지만 그는 이러한 정규적인 방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는 특수한 수행문을 별도로 설정하고 있다. 지눌은 그것을 徑截門, 곧 지름길이 되는 문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지름길이라는 뜻은 점수의 오랜 수행과정을 밟지 않고도 곧바로 부처의 깨달음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며 오직 선에서만 가능한 교외별전의 비법이다. 곧 화두를 붙잡고 명상하는 看話禪을 말한다. 화두란 옛 선사들의 깨달음의 機緣을 담은 이야기라든지 선문답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公案이라고도 부른다. 수행자들이 화두나 공안을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용하는 이러한 간화선은 중국의 大慧禪師 때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다. 지눌은 대혜선사로부터 직접 간화선을 전수받지는 않았으나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그의 어록을 읽는 가운데 크게 깨우침을 얻고 그 후 간화선을 선 수행의 최고의 방법으로 삼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눌은 간화선에 대한 교가들의 의심을 파하고 간화선의 효능을 논하는≪看話決疑論≫을 지었다. 간화선은 지눌의 뒤를 이어 修禪社主가 된 眞覺國師 慧諶에 의해 더욱 크게 발전하면서 한국 선불교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간화선의 구체적 방법은 어떤 것이며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눌은 수많은 화두 가운데서 중국 조사 趙州의 無字공안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삼고 그것을 선 수행자들에게 권하였다. 어떤 사람이 조주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조주는 “無”라는 말 한 마디만을 던졌다는 것이다. 선 수행자는 行住坐臥를 막론하고 24시간 내내 이 「무」를 마음에 붙잡고 그 의미를 깨칠 때까지 參究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무」자 화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화두는 그 의미가 상식적인 차원이나 지적, 교리적 차원에서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며 또 그렇게 이해하려 해서도 안되는 것으로 바로 이 점이 간화선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의 分別智로서는 전혀 손도 댈 수 없는 화두를 큰 의심의 덩어리와 같은 마음으로 붙들고 고민할 때 수행자는 죽음의 체험을 방불케 하는 일대 정신적 위기에 봉착하며 그런 가운데서 하나의 기적적 탈출구를 발견하게 된다. 일체의 지적 이해를 초월하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선 수행자는 불법에 대한 지적 이해의 병(知解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는 체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교리적 진리의 이해는 물론이요 돈오점수의 悟와도 비교가 안되는 결정적인 깨달음이라 한다. 修 이전의 돈오의 오는 지눌에 의하면 아직 지해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解悟임에 반하여 화두를 통한 깨달음은 더 이상 점수의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결정적인 깨달음으로서 證悟라 한다. 따라서 간화선은 돈오점수의 일반적 수행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파격적인 길로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에게만 적합한 길이라고 지눌은 말한다. 그러한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돈오점수의 일반적 수행체계를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하게 될 뿐이라고 지눌은 경고한다.

 그러나 일단 돈오점수의 문을 따르던 자도 선의 궁극적 완성을 위해서는 화두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해의 병을 말끔히 제거하고 완전히 眞心과 합일하는 일대 해탈을 얻기 위해서이다. 물론 특출한 근기의 사람은 돈오점수의 문을 안거치고 처음부터 간화선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지눌은 다만 그러한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한다. 지눌은 看話門을 無心合道門이라고도 부른다. 무심으로 자연히 진리와 하나가 되는 문이라는 뜻이다.

 간화선의 경절문은 교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선가의 독특한 비법이다. 돈오점수론에 관한 한 선과 교에 대하여 융화적 태도를 취했던 지눌도 간화선에 이르러서는 선과 교의 확연한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화두의 참구를 통해 주어지는 깨달음은 知解의 자취를 떨쳐버릴 수 없는 교학적 진리 이해나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서 오직 선만의 고유한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눌은 경절문을 제시하면서도 결코 선을 그것에만 국한시키지는 않았고 그것과 돈오점수의 문과를 배타적인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렇게 볼 때 지눌은 선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가운데서도 역시 선·교의 불필요한 대립을 지양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경절문에 집착하는 선가의 잘못된 태도에도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문자와 경전공부를 무시한 맹목적인 선에 대해서도 역시 비판적이었다. 선의 독자성과 질적 우월성을 주장하면서도 지눌은 결코 선에 대하여 맹목적 집착이나 종파적 편협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눌에 이르러 한국불교사상은 하나의 정점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원효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불교사상의 흐름이 지눌에 이르러 합류하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한편으로는 荷澤 神會, 六祖 慧能, 李通玄, 圭峰 宗密, 永明 延壽, 大慧 宗杲와 같은 중국의 선사와 화엄사상가들이 그 사상적 구조물을 구축하는 기둥들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원효나 의상과 같은 한국불교사상가들, 그리고≪金剛經≫·≪華嚴經≫·≪大乘起信論≫과 같은 핵심적 경전들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눌은 이러한 다양한 사상들을 어디까지나 자신의 불성의 실현이라는 일관된 禪的 관심에 따라 수용하면서 각기 다른 정신적 능력과 종파적 배경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자신에 알맞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내적 다양성과 신축성을 지닌 포괄적 수행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金君綏가 지은 지눌의 비명은 그가 학인들을 위해 圓頓信解門·惺寂等持門·徑截門의 3문을 세웠다고 전해주고 있다. 실로 지눌사상의 핵심을 요약해 주는 말이다. 원돈신해문은 곧 돈오문이고 성적등지문은 점수문이요 경절문은 교외별전의 心印을 전하는 파격적 길인 간화선인 것이다. 의천과는 달리 지눌은 선·교의 갈등이라는 당시 불교계의 크고도 어려운 문제를 앞에 놓고 어떤 외적·물리적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개인의 진지한 수도와 내적·사상적 대결을 통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禪을 주로 하고 敎를 종으로 수용하는 독특한 한국적 불교전통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의 불교사상은 조선의 명승 西山大師 休靜에 의해 계승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후기 이래 승려들의 교육기관인 講院의 교과과정 등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의 사상과 수행 전통에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오고 있다.

<吉熙星>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