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Ⅰ. 사상계의 변화
  • 3. 풍수·도참사상 및 민속종교
  • 1) 풍수·도참사상
  • (2) 풍수타락의 원인과 지기론

(2) 풍수타락의 원인과 지기론

 초기의 풍수는 땅의 기운, 즉 地氣를 느끼는 氣感論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지기를 느낄 수만 있다면 모든 풍수이론은 사실상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모든 풍수서는 가르친다. 그토록 중요한 것이 지기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인지가 복잡해지고 문명화되어 가면서 지기를 느끼는 기감론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사람들이 지기를 느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산수의 형세를 미루어 지기를 짐작하는 형세론을 개발하게 되며 뒤에는 이기론에 입각한 坐向論이라는 고도의 술법까지 내놓게 된다.

 이 문제는 중국 풍수사상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아주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 풍수사상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의 後漢 때라고 알려져 있다. 이 때만 해도 유학은 겨우 힘을 얻기 시작해서 다른 학문이나 사상을 지배하지 못했을 때이다. 현존하는 풍수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靑烏經≫에 의하면 “산이 멈추고 물이 돌아가는 곳(山頓水曲), 그리고 음양이 부합되는 곳이 氣가 모이는 吉地”라고 했다. 4세기 사람인 東晉의 郭璞은 후일≪錦囊經≫이라고까지 추앙받은 그의 葬書에서 “得水藏風한 곳이 길지”라고 표현하며 길지의 입지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 때만 해도 기가 모인 곳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기보다는 어떠한 곳이 길지이고 어떠한 곳이 흉지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즉 기를 찾는 방법이 아니고 기의 길흉에 대한 분류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대 이후가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즉 산의 모양을 보고 기를 찾으려고 한다. 산도 당시 유행하던 도교의 북두칠성신앙과 결부시켜 산 모양에 별 이름을 붙였고 또 五行도 부과하였다. 이렇게 차츰 陰陽五行說을 도입하기 시작한 풍수사상계도 12세기 송대부터는 주자의 이기설을 그대로 도입하여 “理가 氣를 주재하여 萬象과 萬物의 생명과 운행을 주도한다”고 주창했다. 이 때의 理란 음양오행의 이치를 말하며, 풍수에서는 이 理를 나침반에 나타나게 했다. 즉 좌향론의 발전이다. 여기서 풍수술은 사람과 자연과의 기를 통한 연결을 없애는 결과를 빚어내고 말았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풍수사상의 과학적이고 합리적 수용에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꼽혀지고 있는데, 이 점은 고려시대라고 하여 다를 바가 없다. 즉 풍수의 논리체계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인 지기를 합리적으로, 그리고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상황이 풍수의 타락과 잡술화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기의 파악은 인간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과정에서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자연현상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방법을 포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라는 개념은 동양인들의 우주론이나 세계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고 역사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해석되어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가 나타나는 영역은 우주생성론·우주구조론·철학·천문·역법·지리·의학·기술·예술·병법·무술 등 매우 넓은 방면에 걸쳐 있다. 기는 일체의 존재 또는 기능의 근원이며, 물질·마음·생명을 성립시키고 있는 본바탕이다. 기가 모임과 흩어짐을 거듭하여 끊임없는 운동과 흐름을 계속하는 사이에 모든 현상이 일어난다.

 동양인들은 전통적으로 지기의 존재와 그 흐름이 산과 물, 식생과 기후의 지리적 특징과 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동양인들에게 있어 지리학은 地利와 地脈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地理라는 학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地利이고 다른 하나는 地脈이다. 지리란 산천의 험함과 평탄함을 살펴 성곽과 고을과 마을을 설치하여 나라를 세우고, 한편으로는 도로와 촌락의 균형과 멀고 가까움을 살펴 출입에 쉽도록 하며, 땅의 높낮이를 알아 도랑을 파고 개천을 뚫어 관개에 이익되게 함을 말한다. 지맥이란 땅의 음양과 그 흐름을 觀相하여 크게는 建都立邦하고 작게는 卜宅營葬하여 복됨과 길함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따라서 지리는 백성의 후생을 돕는 일이고 지맥은 사람의 명운을 관장하는 일이다(≪地理大成山法全書≫序文).

 위의 내용은 땅을 보는 안목에 두 가지가 있음을 분명히 밝혀 놓고 있다.

 유기체적 우주발생론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설을 포함하는 중국의 고대사상은 선진에서 한대에 이르는 시기 동안 집대성되었는데, 이 때에 즈음하여 인간과 자연의 氣的 연관을 중시한≪列子≫·≪管子≫·≪淮南子≫ 등 도가계열의 문헌들이 편찬되었다. 이미 이러한 문헌 속에는 오늘날의 풍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尙書≫의 禹公,≪管子≫의 地員,≪呂氏春秋≫의 任地,≪周禮≫의 地官篇 등이 농업과 관련된 식물·토양·기후·물·지형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여기서 지기와 기맥 등의 기적인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의 틀이 나타나고 있다.0327) 中國科學院 自然科學史硏究所 地學史組(主編),≪中國古代地理學史≫(科學出版社, 北京, 1984), 5∼6·14·79·224쪽.

 이것으로 보아 농업을 매개로 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적 세계관이 더욱 세련되어 갔고, 풍수라는 독자적 논리체계로 성장하기 위한 충분한 토양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의 실체는 불분명하며 간단한 작용원리나 구조 조차도 설명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여기에서 풍수사상이 타락하여 잡술화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고 생각되는 바이지만, 이것이 특히 첨예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풍수지리인 음택에 관한 氣論일 것이다. 묘자리를 선정하는 풍수술은 도시와 건물을 선정하는 풍수술보다 더 나중에 생겨났다. 18세기의≪四庫全書總目≫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陰宅風水(葬地之說)는 그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다. 周官에서는 묘지 관리들의 임무에 관한 언급에, 이장은 친족관계에 따라 그 위치가 정해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周王朝까지는 묘자리가 풍수설에 따라 선정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漢書≫권 30의 刑法家 항목에 이르러서야 相人과 相物에 관한 책들과 함께 열거된 宮宅地形과 堪輿金櫃라는 분야를 보게 된다. 따라서 풍수술은 한대에 최초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매장방법에 대해 특별히 언급된 것은 아직 없었다.≪後漢書≫권 75에는 어떤 사람이 부친이 돌아가자 묘자리를 찾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람은 길에서 세 명의 학자를 만났는데 그들은 높은 벼슬을 할 자리를 지적해 주었다. 그는 그들의 조언을 따랐고, 그리하여 그의 자손들이 수 세대에 걸쳐 영예와 부귀를 누렸다. 이것은 풍수술이 東漢 이래로 번성하고 퍼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欽定四庫全書總目≫권 109, 子部 19, 術數類 2).

 여기서 지기론 자체의 신비적 속성은 이 정도로 그치기로 하고, 그것이 실제 학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언급되었을까. 지기라는 말의 문헌적 용례를 볼 때, 이 말의 의미는 기후의 변화 및 농작물의 생장과정과 관련된 땅 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농경의 실천을 통해 농작물의 생장이라는 생명현상을 지기로써 해석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기후현상을 기의 순환으로 표현했다. 여기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만물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토양의 서로 다른 분포양상을 지기에 의한 것으로 보고, 지형·식생의 작용, 강우나 바람 등의 기후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는 측면을 지기로 파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지기는 에너지와 물의 순환, 또는 지상의 수증기, 지구의 대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기는 어떤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과 관련된 체계의 연속적·기능적 작용의 총체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서 태양에너지와 순환하는 물, 그리고 그 순환을 담아내는 땅, 이 3자의 기능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려는 의미에서 지기의 개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물의 제작과 관련하여 산물의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적 외적 조건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도 사용되었다.

 특히 동식물의 분포와 생육의 자연조건이 지기라는 틀로써 해석되고 있다. 지리적 다양성과 만물존재의 지리적 조건에, 특히 인간의 질병과 성질·체질·지능에 미치는 각 지역의 땅의 특성, 또는 영향력을 지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관찰을 통해 기적 유형으로 종합하여 소박한 「地氣的 環境論」을 펼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이러한 생각은 풍수적 사고에 대단히 근접한 것으로 풍수의 이론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양인들은 땅에서의 모든 사물의 변화와 인간의 생명의 변화를 지기라는 개념의 틀을 빌어 설명하고, 그 상호관계와 조직원리를 경험과학적으로 논의하고 추구해 왔다. 그리고 그것을 풍수의 체계로 성립시켰다. 지기란 개념은 동양인들이 그들이 발딛고 있는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을 느끼고 인식한 것을 풀이해 내는 틀이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몸이 살아 있는 땅과 교감해서 촉발되는 느낌을 체계적으로 구성과 풀이를 해낸 틀이었다. 그 용법은 산물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 조건, 동식물의 생육과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땅의 성격, 인간의 체질과 지능에 미치는 풍토, 지리적 특성 등을 나타내는 다양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기론이란 우주적 제관계 속의 각 요소들의 체계적인 작동방식을 개념화하고 생동하는 각 양상들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였다. 풍수는 이러한 기론에 바탕하여 논리체계를 성립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논리체계 또는 인식체계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공간상에 투영되어 왔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하늘과 땅의 상호작용을 통한 생명력의 확보라는 대단히 훌륭한 사상적 가치들을 온축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해석체계를 갖추어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엉터리 잡술가에 의한 타락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더욱 나쁘게 진전된다면 圖讖的 秘術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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