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2) 지리학과 지도
  • (2) 풍수지리학

(2) 풍수지리학

 지도의 제작과 지리지의 편찬, 풍수지리학은 고려 지리학의 세 기둥이다. 그런데 고려 후기에 지리지가 편찬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전기에 있었던 몇 가지 지리지의 편찬 이후, 새로운 지리지가 편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풍수지리학도 풍수지리서의 편찬만을 놓고 볼 때에는 특별히 두드러진 저술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풍수지리의 연구는 여전히 활발했던 것 같고, 풍수지리설의 영향은 여전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강력했다. 전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풍수지리학은 인문지리학적인 성격과 자연지리학적인 성격이 복합적으로 얽힌 종합적 지리학체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풍수지리학은 지도의 제작과 그 수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리는 땅의 이치이고 지도는 그 땅의 그림이며, 풍수는 자연이며 세계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수지리학은 곧 땅의 과학이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의 풍수지리학은 기록에 나타난 것만으로 볼 때에는 별로 뚜렷한 것이 찾아지지 않는다. 예종 원년(1106)에 편찬되어 나온≪海東祕錄≫에 더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려 풍수지리학에서 절대적 권위를 누리고 있었던 道詵의 영향도 여전했다. 조선 태조 때에 있었던 새 도성의 후보지 선정을 위한 풍수지리학의 이론적 바탕이 된 것은 모두 고려 후기부터 전해진 풍수지리서였다. 고려 서운관에 소장되어 있던 책들이었던 것이다.≪해동비록≫을 비롯해서≪海東古賢讖記≫·≪道詵明堂記≫등이 그것이다.

 풍수지리설은 고려 후기에 궁궐과 사찰, 개인주택의 건립에서, 그리고 도읍의 위치를 정하는 일이라든가, 묘지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고려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풍수설은 고려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지형과 지세의 탐구를 통해서 자연에 대한 조사와 관찰 및 지형·지세의 묘사를 촉진케 했다. 그것은 특히 지도작성의 수법에서 현저하게 드러나 한국지도의 한 특징적 유형을 이루는데 공헌했다. 산을 낱낱이 그리지 않고 산맥으로 그리는 수법은 조선의 지방지도에서는 많이 볼 수 있으나, 중국에서는 墓圖를 제외하고는 거의 볼 수 없다. 이러한 조선지도의 특색은 풍수지리에서의 묘도의 도법이 일반지도에서도 쓰이게 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시기는 고려 후기 이전에 이미 자리가 잡혔다고 생각된다.

 풍수지리설은 지리학의 한 이론으로서 자연과 인간, 땅과 인간의 관계를 전개하여 학문적 체계를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고려에서 전기와 후기에 걸쳐 중국의 풍수지리학과 또 다른 체계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가할 만하다. 그것이 음양오행설이나 도참설 또는 토속신앙과 연결된 해석과 얽혀서 마치 미신적인 것인양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풍수지리학의 학문적 본질을 손상시키는 평가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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