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4) 무기제조와 조선
  • (1) 화약과 화포의 전래

(1) 화약과 화포의 전래

 화약과 화포가 고려에 언제 전래되었는 지는 확실치 않으나, 대체로 14세기 전반 무렵으로 생각되고 있다.≪고려사≫병지에는, 공민왕 5년(1356)에 銃筒을 사용하여 箭을 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고려에서는 그 때에 이미 有筒式 火器를 사용할 줄 알았다. 이 총통이 고려에서 만든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늦어도 이 무렵에 화약과 화포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은 틀림없다. 이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총통으로 발사한 전의 사정거리는 매우 컸고 화약의 폭발음은 놀라운 것이었다. 고려사람들은 새삼스레 화약병기의 위력에 놀라워 했고 그 중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려에서는 화기의 제조와 화약의 조제법을 알아내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화약병기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은, 그 당시 고려 전역에까지 확대될 기세를 보인 왜구의 섬멸을 위해서 더욱 고조되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고려에서는 화약의 제조법을 알지 못했다. 중국에서 그것은 특급비밀이었고, 제조기술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공민왕 22년 11월에 고려는 어쩔 수 없이 명에 사신을 보내서 화약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왜구의 격멸을 위해서는 화약병기로 무장한 전선이 반드시 건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화포로 무장한 전선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바다에 나가서 왜구의 배를 추격·나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명은 고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렇지만 명에서도 왜구의 창궐로 인한 피해가 날로 극심해져 고심하고 있던 차였으므로, 고려의 그러한 요청을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 다음해인 공민왕 23년 5월에 명은 그 때까지 극비에 부쳤던 화약원료를 태조의 지시로 나누어 주겠다고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얻어 온 것이 염초 50만 근, 유황 10만 근과 그 밖에 필요한 약품들이었다. 이것은 화약제조기술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고려에 주게 되었다. 원료와 그 배합 비율의 기밀을 고려에서 알게 된 것이다.

 崔茂宣의 화약제조를 위한 노력은 이러한 사회적·군사적 정세와 기술적 배경에서 경주되었다. 그는 왜구를 무찔러 없애기 위해서는 화포의 위력을 발휘하는 길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오랫동안 화약제조기술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화약제조기술을 아는 중국인 李元에게 그 가장 중요한 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마침내 화약제조법을 완전히 알아내게 되었다. 일설에는 최무선 자신이 원나라에서 직접 그 기술을 배웠다고 하는데,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최무선이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 즉 질산칼륨을 흙에서 추출하는 기술을 실험적 방법으로 알아낸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노력은 화약제조기술을 발명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한 업적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리하여 고려는 최무선의 화약제조법에 의한 화약제조를 위해 국가기관으로서의 火桶都監을 두게 되었다. 그것은 우왕 3년(1377) 10월에 정식으로 발족되었다.0421)≪高麗史≫권 133, 列傳 46, 신우 3년 10월 및 권 77, 志 31, 百官 2, 諸司都監各色 火桶都監. 이로써 고려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화약의 자체 생산은 군사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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