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6) 의약학과 생물학
  • (5) 동물의 사육

(5) 동물의 사육

 고려에서는 가축이 널리 사육되었다. 소·말·돼지·개·닭 등을 주로 길렀는데, 일반 농가에서는 사역하거나 식용을 위한 부업으로 사육하였다. 정부에서는 축산을 위해서 여러 기관을 설치하여 전담관리로 하여금 소관 사무를 관장하게 했다. 그러나 어떤 가축이 얼마나 사육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자료가 아직은 없다.

 정부의 관서에서 사육·관리하는 가축류는 주로 말이었다. 말은 사람이 타는데 쓰였다. 왕의 行幸이나 여러 가지의 의식에 사용되고, 또 군용마나 역마 등으로 중요하게 쓰였다. 말을 사육하기 위하여 고려에는 10여 개 가량의 牧馬場이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제주도의 목장은 그 규모가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원나라에 의하여 관리되어 많은 몽고말이 방목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목장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과 횡포는 심했지만, 그렇게 시달리면서 고려인들의 목마기술은 더 좋아지고, 품종의 개량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목장에서는 말 이외에 소·낙타·나귀·양 등도 사육되었으나, 별로 좋은 성과는 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낙타가 사람을 태우거나 사역하는데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려에서는 또 귀족들의 관상용 동물로 진귀한 외국산 동물들이 수입되어 사육되었다. 고려에 온 외국의 사신들이나 무역상들은 그런 동물들을 왕실에 헌상했다는 기록이≪고려사≫에 여러 번 나타난다. 앵무새·공작·물소 등은 헌상품목에 자주 나타나는 것들이다. 궁중에 그러한 완상동물을 모아 놓은 동물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목축과는 조금 다르지만 또 한 가지 사육된 동물이 있다. 사냥에 쓰이던 매를 기르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에서는 매를 잘 길렀다. 매사냥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의 사육은 그보다도 원이 늘 요구했던 海東靑 즉 매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행해지기도 했다. 해동청의 수요에 응하기 위해 鷹坊이 널리 설치되었다. 그러나 고려인의 매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고려사람들의 가축에 대한 동물학적 지식은 말과 소에 관한 수의학적 처방법을 실은 馬醫方과 牛醫方으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인 정종 원년(1399)에 성립된≪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은 고려시대의 수의학적 지식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송·원의 마우방서와 고려인들의 경험방을 체계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시대에 수의학에 관한 전통적 경험 처방들이 많이 실용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가축이나 동물에 대한 경험적 지식도 많았으리라고 짐작하지만 그것들을 체계화하거나 기술하는 작업을 고려사람들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아직 없다.

<全相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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