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4. 역사학
  • 1) 각훈의≪해동고승전≫
  • (4) 각훈의 역사인식

(4) 각훈의 역사인식

 유통편의 논은 우리 나라의 불교유통과 더불어 인도 및 중국에서의 유통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현존≪해동고승전≫에 수록된 正傳 18편 중 11편에 찬을 덧붙였다. 논과 찬에는 각훈의 역사인식, 특히 불교유통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해동고승전≫의 찬은 사찬이고 사평이다. 이것을≪삼국사기≫의 논이나≪삼국유사≫의 찬과 비교한다면 논에 더 가깝다.≪삼국유사≫의 찬은 찬양이나 찬송의 의미를 가진-앞에 기록한 산문의 내용을 운문으로 요약하거나 되풀이한-重頌의 성격이 강한 편인데,≪해동고승전≫의 찬은 고승들의 덕업에 대한 찬미의 성격이 강하다. 이제 찬을 중심으로 각훈의 역사인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각훈은 우리 나라의 불교사를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인식하고 있는데, 당시 고려불교의 발전을 토대로 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삼국의 불교유통에 기여한 고승들을 중국의 인물에 비교하면서 그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그 비교는 중국과 대등한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나라의 고승이 더 훌륭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순도를 竺法蘭과 康僧會와 같은 인물이라고 평했고,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를 진의 利方이나 한의 摩騰보다 높이 평가했다. 각훈은 우리 나라에 불법을 전한 순도 및 아도를 중국에 불법을 전했던 축법란·가섭마등·이방·강승회 등에 견주어서 그 덕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각덕과 지명의 중국 구법을 季札이 周왕실에서 음악을 보았던 것과 공자가 노자에게 禮를 물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평가했고, 원광이 世俗五戒를 가르친 것을 慧遠이 노장을 인용하여 강론했던 것과 대비하고, 살생유택은 殷의 湯이 그물의 3면을 터놓고 고기를 잡던 것과 仲尼가 잠든 새를 활로 쏘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그리고 진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것은 후한의 명제가 불교를 중국에 편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며, 신라승의 인도 구법은 곧 法顯과 玄奘의 자취를 좇은 것이라고 평했다. 신라고승의 활동을 중국의 뛰어난 역사인물과 견주어 평가함으로써 그 위덕을 더 고취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다. 각훈은 또한 불교사의 전개와 관련하여 유통편의 논에서, “周에서 근원이 흘러 漢에서 갈라졌으며, 晋과 魏에서는 양양하였고, 唐에서는 한만하였으며, 宋에서 물결이 일어 우리 나라에 와서 깊이 흘렀다”고 이해하였으며, 또 “세상사람들이 진흥왕을 양무제에게 비교하지만 어떻게 양무제가 진흥왕을 따를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하는 그의 평가를 통하여 각훈의 인식의 바탕에는 당시 고려불교 및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깊게 뿌리박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훈은 우리 나라의 불교수용에 대해서 機緣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인식했다. 기연을 따라 교화했다거나 세상의 도리가 서로 도왔다고 하는 것은 불교가 전래될 무렵의 이 땅에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어 있어서 불교를 받아들일 만한 제반 조건이 성숙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불교유통에 대한 각훈의 이와 같은 인식은 전교자들의 노력은 물론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이 나라가 불교와 인연이 많은 곳이라는 불국토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각훈은 우리 나라에 불교가 두루 유통될 수 있게 된 사실을 크게 찬탄했다. “道는 스스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말미암아 퍼지는 것임을 뒷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 유통편을 설정한 뜻이었다. 그는 순도가 서역의 자비로운 등불을 전하고 동방의 慧日을 높이 밝혀 우리에게 인과의 법칙을 보여주고 화복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불교의 유통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선을 닦게 함으로써 결국 세상을 두루 도운 결과라는 각훈의 인식은 불교의 홍포라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결국 불교의 홍포는 고승들의 전법과 교화에 의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는데, 순도가 자비와 인욕으로 중생을 제도했다거나 마라난타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인연을 따라 교화했다는 등의 찬이 모두 그렇다.

 각훈은 고승들의 신이하고 특이한 행적을 강조하여 그들의 덕을 찬양했다. 곧 고승들의 이적을 강조함으로써 그 업적을 더욱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어느 종교에도 신앙적 靈異가 없지 않았지만, 불교에서는 불보살의 신이한 변화와 특이한 일을 말함으로써 종교적 감동을 주고자 했었다. 각훈이 고승의 이적을 강조한 것도 고승들의 행적을 찬탄하여 종교적 감동을 촉발시키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요컨대 사관에 의해 편찬된 대부분의 관찬사서들이 유교사관에 기초하여 쓰여지고 있던 13세기 전반에 승려 각훈은 민족문화의 자주성을 강조한≪해동고승전≫을 지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의 사학사적 위치는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金相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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