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4. 역사학
  • 8) 고려 후기 역사서술의 특징
  • (4) 고려 당대사의 정리

(4) 고려 당대사의 정리

 원의 간섭시기에 편찬된 통사류의 관찬사서들은 당대사, 즉 고려왕조사에 관한 것이 대체로 많았다. 오양우의≪국사≫, 원부 등의≪고금록≫, 이인복의≪고금록≫ 등이 당대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서들은 모두가 고려 당대사였다. 정가신의≪천추금경록≫, 민지가 문성대왕으로부터 고종대에 이르는 고려사를 편찬한≪本朝編年綱目≫, 이제현 등이 빠져버려 없는 부분을 보충한≪增修編年綱目≫ 등은 모두 당대사였다. 그리고 이제현 등이 편찬에 착수했던≪국사≫도 태조 이래의 당대사였다. 뿐만 아니라 충숙왕 원년(1314)에 민지 등이 태조로부터의 실록을 약찬했던 것도 당대사의 정리라는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원 간섭기에 편찬된 대부분의 통사류가 고려 당대사였다. 왕조가 망하기도 전에 당대의 왕조사를 정리한 것은 특이한 예이다. 이같은 현상을 원 간섭시기의 문화적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는0658) 鄭求福,<高麗後期의 歷史認識과 敍述>(≪韓國史論≫6, 國史編纂委員會, 1981), 54쪽. 당시의 절박한 현실문제를 감안할 때 주목할 만하다.

 충목왕 2년≪편년강목≫의 증수를 명하는 교서 첫머리에서 “태조께서 개국하신 지 이제 429년이 되었다”고 고려의 개국연대를 새삼 상기시키고 있으나, 이제현이 “시조 王氏가 나라를 창건한 지 400여 년이 되었고, ‘사직의 신령이 남모르게 돕고 있다”0659) 李齊賢,≪益齋亂藁≫ 권 6, 在大都上中書都堂書·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贈諡威列公金公行軍記.고 강조한 것 등에서는 고려의 종묘사직을 지켜 가고자 하는 자주적 의식이 보이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원 간섭 이전과 그 이후의 시기를 구분해서 보려고 하는 의식 또한 원 간섭 이전의 고려 당대사 정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후기의 역사서술이 대체로 현실문제를 타개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했던 것도 당대사 정리에 대한 관심으로 기우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