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6. 음악
  • 3) 당악과 당악정재
  • (1) 송의 교방악사와 당악정재

가. 송나라 교방악사의 등장

 고려 당악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고려조정에 파견되었던 송의 敎坊樂師들이었다. 송의 교방악사들은 일정한 기간 동안 고려에 머문 후에 귀국했지만, 일부는 고려조정에 머물면서 송나라의 교방악을 전수시켰다. 아래의 인용문에 의하면, 충렬왕 때의 金呂英과 충숙왕 때 그의 손자 金得雨가 송나라에서 파견되었던 교방악사의 후예들이었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악사들이 일본조정에 파견되었던 것처럼, 송의 교방악사들이 고려음악사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고려에 새로운 음악문화가 보급되는 데 이바지한 때문이다.

예조에서 상언하기를, ‘전조의 광왕이 사신을 보내어 당의 악기와 악공을 청하여, 그 자손이 대대로 그 업을 지키게 하였는데, 충렬왕조에 이르게 되어서는 김여영이 맡았고, 충숙왕조에는 그의 손자 김득우가 맡았습니다’(≪太宗實錄≫ 권 22, 태종 11년 12월 신축).

 당악이 고려에 최초로 소개된 때는 위의 기록에 의하면 광종 때였다. 광종 이후 송의 熙寧(1068∼1077)연간 및 元豊(1078∼1083)연간에도 고려조정은 악사를 보내달라고 청한 바0774) 徐 兢,≪高麗圖經≫ 권 40, 同文 樂律. 있었다. 초청된 송의 교방악사들이 고려의 왕립음악기관에 머무르면서 가르친 종목들은 주로 포구락·답사행가무 등과 같은 당악정재였고, 당악정재에 따르는 창사·구어·치어 및 반주음악에 사용되었던 생·당비파·장고·당적·방향·당피리·박 등과 같은 당악기들이었다. 이러한 당악정재와 당악기 및 노래를 가르친 교방악사들에게 주었던 녹봉이 문종 30년(1076)에 규정되었는데,0775) 이 글 1)의 (2)<표 2> 참조. 당악정재와 창사를 가르치는 교방악사의 녹봉은 당악기를 가르치는 악사들의 것보다 높았다.

 송나라 교방악사의 등장은 음악사적 관점에서 세 가지 역사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중요시되어 마땅하다. 첫째로 그들은 고려 왕립음악기관의 좌부에 소속된 당악을 새로운 형태의 음악문화로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둘째로 송의 교방악사가 고려조정에 당악정재를 정착시켰을 뿐아니라 향악정재의 등장에 결정적인 구실을 담당했다. 셋째 앞시대와 구분지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인 당악정재를 송의 교방악사들이 고려에 정착시켰던 것이다. 요컨대 송의 교방악사는 고려조정에 당악정재를 정착시킴으로써, 고려음악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시켰고, 더 나아가 외래문화를 자주적으로 수용한 대표적 표본의 하나인 당악정재의 유산을 현재까지 전승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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