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회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공연예술의 작은 갈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伎樂과 雜技였다. 문헌에서 기악은 주로 歌舞雜戱 또는 기악잡희로 기록되었고, 잡기는 雜劇伎·가무잡희·가무잡기·백희가무 등으로 불리었다.0823) 宋芳松, 앞의 책(1985), 333∼389쪽. 여러 명칭들이 시사하듯이, 기악과 잡기는 노래·춤·음악·재주 등의 종합적 형태의 놀이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공연예술의 한 갈래였다. 고려시대 기악과 잡기의 공연예술에 관한 李穡의 시는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오색의 비단으로 장식한 산대의 모양은 봉래산과 같고 바다에서 온 선인이 과일을 드린다. 속악을 울리는 북과 징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처용의 소맷자락은 바람에 휘날린다. 백희의 하나인 기예곡예로 긴 장대 위에서는 평지와 같이 재주를 부리고 폭발하는 불꽃이 번개처럼 번쩍인다(李穡,≪牧隱詩藁≫ 권 33, 詩 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
이 시를 통해 당악정재의 하나인 獻仙桃, 향악의 반주에 맞추어 춤추는 處容舞가 공연되었으며, 줄타기·불꽃놀이 등의 재주가 종목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고려사회의 가무백희는 이러한 공연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