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0.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1) 개관

(1) 개관

 고려는 처음 신라의 복식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다가1142)≪三國史記≫ 권 33, 雜志 2, 色服. 광종 7년(956)에 이르러 비로소 公服제도를 정비하였다1143)≪高麗史≫권 2, 世家 2, 광종 11년 3월 및 권 72, 志 26, 輿服, 광종 11년 3월.
≪高麗史節要≫ 권 2, 광종 7년·11년.
. 대개 송의 제도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고려가 몽고의 침공을 받고 원의 간섭이 100년이나 되는 동안 우리 옷은 큰 변화를 겪는다.

 이와 같은 복식사의 흐름을≪高麗史≫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三韓 이래로 儀章과 복식의 國風을 따르다가, 신라 太宗에 이르러 당의 제도를 청하여 쓰니, 이후 冠服제도가 중국에 얼마간 견줄 만큼 되었다. 고려 태조가 개국함에 따라 일이 많고 초창기라서 신라의 옛것을 그대로 따랐다. 광종에 이르러 비로소 백관의 공복을 정하니, 이에 귀하고 천함과 높고 낮음의 차등과 위엄이 밝혀졌다. … 원의 간섭을 받은 이래 辮髮胡服이 거의 백년이나 되었다. 명이 들어서자 … 이로부터 衣冠文物이 점차로 다시 새로워졌으며 그 형식과 내용이 완연히 예전보다 훌륭하게 되었다(≪高麗史≫ 권 72, 志 26, 輿服).

 이처럼 고려시대 우리 옷의 역사는 전기와 후기의 양상이 아주 다르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복식은 ①고려 전기 ②몽고침입 및 간섭기 ③고려 후기로 나누어 고찰해야 그 전모가 파악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이 세 시기를 통하여 나타나는 복식변화가 우리 나라 복식사의 큰 전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 복식사의 큰 흐름을 살펴볼 때, 상고에 우리 고유양식이 있었고, 그것이 변전을 거듭하여 조선시대 중·후기에 독특한 韓服양식을 성립시켰으므로, 고려시대는 상고복식과 근세복식의 접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겪은 우리 옷의 변화가 훗날 한복양식을 결정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는 한복의 전통성과 특징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복식생활은 실물과 사료가 매우 적어서, 아직껏 그 구체적인 실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복식사료는 단편적인 문헌기록이 산견될 뿐이며, 그 중에서는 徐兢의≪宣和奉使高麗圖經≫(이후≪高麗圖經≫, 인종 원년 ; 1123)이 좀 자세하나 圖繪는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옷의 실물은 1973년에 발견된 불상의 腹藏品인 고려 후기의 白紵布(중요민속문화재) 1점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초상화와 불화 등 회화사료들이 있으나, 역시 이 시대 복식생활 규명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고려시대의 의생활이 우리 복식사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연구의 공백기로 남아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복식사의 서술은 단편적인 사실을 엮어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그칠 뿐, 생동하는 복식생활의 전모를 재구성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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