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5.≪경국대전≫의 편찬과 계승
  • 5) 초기의 법사상과 법생활
  • (2) 예주법종사상의 실체

(2) 예주법종사상의 실체

 479)朴秉濠,<韓國에 있어서의 法과 倫理道德>(≪法史學硏究≫12, 韓國法史學會, 1991) 참조.우리 나라를 포함한 전통적·유교적 중국문화권의 전근대법 내지 법사상의 특성은 한마디로「禮主法從」이라고 한다. 법은 禮治를 위한 보조수단이며 예는 도덕규범으로, 법은 실정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예주법종은 어디까지나 이상이고 실제로는 법주예종으로 발전해왔다. 행정조직법이나 행정작용법, 그리고 형사법은 실정법으로서 규정되었고 예는 다만 이들 법의 바탕에 유교적 가치체계의 일반적 지침으로서 깔려 있었다. 이 일반적 지침이 성문법 속에 구체적·기술적인 규정으로 담겨져 법률을 통해서 작동되는 한, 예주법종사상은 표면화되지 않았고 그렇지 못할 때 항상 이상으로서 주장되었다. 특히「法」의 주되고 기본적인 뜻은「刑」이었기 때문에「예주법종」의「법」은「형」의 뜻으로 새겨야 옳고 형 외에 일반적·보편적인 법이라는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법을 거론하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함을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형법분야에서는 성문법과 선례가 완결적 충족성을 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가 法源으로서 직접 작동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私法的 관계에 관해서도 성문법은 거의 공공적 질서에 관련되는 한도 내에서 규정되었기 때문에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사법관계는 예나 經義나 理에 의하여 규율되었다. 예와 경의는 주로 가족관계에 적용되었으며 성헌들의 말씀이나 경서나 예서는 법적 실정성을 지니고 성문 제정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었으며 기타의 재산관계나 거래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理에 의하여 규율되었다. 理는 천리·도리·인심·정리·경위라고 표현되었는데, 그것은 사물에 내재하는 도리이며 각자의 마음 속에 공통적인 법적 확신으로서 내재하는 보편타당한 일반원칙이었다. 그러므로 이 분야에서는 이가 법이었던 것이며 성문 제정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제1차적 법원이었다. 이와 같이 규율되는 분야에 따라서 법·예·이는 각기 제1차 법원으로서 혹은 제2차 법원으로서 적용되었던 것이다. 史書에는 형법 또는 刑法志가 있는데, 그 뜻은 오늘날과 같은 형벌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과 법이라는 뜻임을 주의해야 한다

 형이란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징벌하는 것이고 법이란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법규정은 거의 예외없이 위반의 경우에 처벌하는 형벌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었으며 설사 순수한 행정법적 규정이라 할지라도 간접적으로는 형벌과 관련을 갖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행위가 저질러진 뒤에는 처벌하는 것을 능사로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위법행위가 저질러지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미리 피할 줄 알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형벌이 아니면 법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 법은 일반적으로 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형은 반드시 전형적인 형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제재를 뜻하는 개념이었다. 더욱이 학자나 관료들은 법을 논할 경우에 형과 법을 결합시켜 이해하기보다는 법과 예·이를 결합시켜서 이해하고자 하였고, 이를 이상으로 삼았다. 예라는 것은 천리와 인정에 합당한 법이라고 보고 법이란 사람을 위협해서 두렵게 하고 비통하게 만들므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감히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법의 윤리적 기초, 즉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근거한 예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즉 법이 예이어야 하고 예가 법이어야 한다고 보고 자연법칙인 천리·인정과의 조화를 무시하고 인위적인 법·형에 의해 통치하는 것을 배격하였다. 그것은 政刑을 부정하고 德禮만으로 통치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법의 바탕에는 천리·인정이 깔려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법이 타당성과 실효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주법종사상을 이해할 경우에 예에 바탕을 두지 않는 인위적인 형벌로써 백성을 협박하여 공포에 떨게 하는 참혹한 법치정치를 배격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코 예치주의를 현실적으로 관철한 것이 아니며 법과 형이 예에 바탕을 두고 있는 법치주의를 이상으로 여긴 것이다. 더욱이 예는 윤리·도덕 특히 유교적 윤리·도덕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 습속적 예, 즉 역사적 문화적 습속도 포괄하는 뜻도 있는 것이므로 그런 점에서 禮法은 理法으로서의 실천적 행동규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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