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5.≪경국대전≫의 편찬과 계승
  • 6) 법전편찬의 계승과 법사상의 변화
  • (1) 속록 등 법령집의 편찬

가.≪대전속록≫

 481)朴秉濠,<朝鮮後期 變法思想과 法令整備事業>(≪素軒南都泳博士古稀紀念 歷史學論叢≫, 民族文化社, 1993).최종적으로 확정하여 성종 16년(1485) 정월 초하루부터 시행된≪경국대전≫도 실은 누락·착오된 조문이 있었다. 그러나 따로 속록을 편찬하여 시행하지 못하고 그 위에 새로운 많은 수교가 시행됨으로써 법의 시행에 차질을 빚게 되어 속록의 편찬이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성종 22년 10월초에≪경국대전≫시행 후의 수교를 모아 간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모든 수교를 남김없이 印出한다면 신법이 많아져 반드시 후폐가 따르니 영구히 시행할 만한 수교만을 골라 인출하여야 한다는 특진관 李陸의 건의에 따라 수교의 인출이 일단 보류되었다.482)≪成宗實錄≫권 258, 성종 22년 10월 계축. 이에 시행해야 할 수교 중에는 동일한 사항에 관하여 諸曹의 수교가 상이한 것이 있으므로 재상과 6조의 당상관 각 1명으로 구성하는 회의체에서 가부를 참작하고 이를 稟旨한 다음 인출하자는 특진관 李克墩의 건의가 받아들여져서,483)≪成宗實錄≫권 258, 성종 22년 10월 경신. 성종 22년 10월 17일 우찬성 魚世謙·廣川君 李克增·호조참판 權健·이조참의 李諿·예조참의 安琛·병조참지 李枰·형조참의 尹坦·공조참의 金碔로 하여금 受敎勘校廳을 구성하게 하여 편찬하게 하였다.484)위와 같음. 이들의 임무는 대전 후의 수교 중 시행해야 할 것을 선별하는 일이었는데 대전의 勘校에까지도 손대었다. 그 중에는 대전의 조문을 개정한 것도 있었다. 23년 7월에는≪大典續錄≫의 초안이 완성되어 대신과 성종의 심의를 거쳐485)≪成宗實錄≫권 267, 성종 23년 7월 병신. 10월에 인출하였으며,486)≪大典續錄≫序 참조. 감교과정에서 새로 만든 법령은 24년(1493) 5월 7일부터 시행하도록 하였다.487)≪成宗實錄≫권 277, 성종 24년 5월 신미. 어떻든 조종성헌 존중을 앞세우고 있었으나 대전 조문을 개폐하자는 주장이 정면으로 표명되어 일부 받아들여졌으며 새로운 조목이 신설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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