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5. 유구와의 관계
  • 1) 통교관계의 성립
  • (1) 유구의 역사

(1) 유구의 역사

 조선 초기 중국·일본·여진 다음으로 많은 교류를 가진 나라가 琉球였다. 유구는 19세기말 일본에게 멸망하여 지금은 없어졌지만 14∼15세기까지는 중국의 책봉체제에 편입하면서 국제무대에 등장하였고, 또 활발한 해외활동으로 남방무역을 주도하였던 나라였다. 유구는 조선 전기 조선에 50여 회에 걸쳐 사신을 파견하였고, 임란시에는 명군에 합류하여 내원군으로 도와주는 등 조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 전기 대유구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유구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구는 현재 일본의 국토로 소속되어 있는 오키나와군도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 유구라는 국명이 정착된 것은 明代 이래이다. 대체로 8∼9세기에 농업이 발달하면서 계급사회로 이행하였고, 11∼12세기에 按司라고 불리는 호족들이 등장하여 쟁란을 계속하다가 14세기 초반에 이르러 유구에는 中山·山南·山北이라는 세 개의 소국가가 정립하였다. 이 시기를 琉球史에서는 三山시대라고 한다. 이 중 중산의 浦添按司였던 察度가 1372년 명에 入貢하였고, 뒤이어 산남과 산북도 각기 명에 입공하면서 유구는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산은 각각 명으로부터 왕호와 함께 銀印·관복을 하사받았다. 세 나라 가운데서 중산이 가장 대외교섭에 활발하였고 나라도 부강하였다. 중산왕 찰도는 2대 70여 년간에 걸쳐 찰도왕통시대(1350∼1422)를 열었는데,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사신을 보낸 것도 찰도였다.

 1406년 중산의 패자 尙巴志가 중산왕 武寧을 멸망시키고 이어 1416년에는 산북을, 1429년에는 산남을 공략하여 삼산시대를 마감하고 유구본도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상파지는 통일 후 수도를 浦添에서 首里(현 那覇市)로 옮기고 이후 7대 60여 년간의 상파지왕통시대(1406∼1469;第一尙氏王朝)를 열었다. 그는 해외무역을 통해 國富를 축적하였으며 國芬寺와 같은 큰 절을 건립하는 등 유구를 크게 발전시킨 중흥의 군주였다. 때마침 중국상인들의 해외상업활동을 금지시킨 명의 海禁令(1368∼1567)은 결과적으로 신흥왕조인 유구에게 해상무역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수리는 중국·조선·동남아시아 제국 및 일본상인이 모여 교역을 하였던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상파지왕통도 후기에 이르러 지방호족(家督)들이 서로 분열하여 왕위계승전을 거듭하다 몰락하고, 1470년 해외무역을 주관하던 尙圓이 왕으로 추대되어 상원왕통시대(1470∼1879;第二尙氏王朝)를 열었다. 특히 상원왕통시대의 3대왕 尙眞(1477∼1526)은 신분제를 확립하고 按司制를 폐지하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여 황금시대를 구가하였다.715)東恩納寬惇,≪琉球の歷史≫(至文堂, 1957), 59∼66쪽.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유구도 국제정치의 흐름속에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중반 이후 명의 해금령 해제에 따른 중국상인들의 남방 진출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상인들의 내항으로 유구의 중계무역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일본 국내정세의 변화와 작용에도 영향을 받았다. 임진왜란시 유구는 豊臣秀吉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히려 명군에 가담하였고, 임란 후 德川家康의 來聘 요구에도 응하지 않다가 1609년에는 薩摩州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조공과 進貢貿易은 지속되었지만 유구의 교역권은 사실상 살마주의 수중에 들어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716)田中健夫,<中世における明·朝鮮·琉球の關係>(≪對外關係と文化交流≫, 思文閣, 1982), 47∼50쪽.

 1609년 이래 유구는 중국과 책봉관계를 맺는 한편 일본 살마주의 간섭을 받는 등 이중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872년 일본 明治政府는「廢藩置縣」정책에 의해 유구왕국을 해체하고 유구현으로 편입시켰다. 이 조치는 유구와 淸國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지만 1879년 일본은 다시 유구현을 오키나와현(沖繩縣)으로 바꾸었다. 이 문제는 그 후에도 일본과 청의 외교절충이 이어지다가 1894년 청일전쟁 후 일본에 귀속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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