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5. 유구와의 관계
  • 5) 문물의 교류와 상호인식
  • (1) 대장경의 구청과 하사

(1) 대장경의 구청과 하사

 1429년 유구를 통일한 尙巴志로부터 尙圓王統時期의 尙眞에 이르기까지 유구왕실은 중국의 정치제도를 수입함과 동시에 통일왕조의 사상적 구심점으로 삼고자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그 결과 유구의 불교는 흥융하였고, 圓覺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이들에게 조선의 대장경 등 불교문화재는 큰 매력이었다.731)秋山謙藏,<琉球王國の勃興と佛敎>(≪日支交涉史話≫, 1935), 181쪽. 세종대 이래 유구사신들은 조선의 불교문화를 흠모하여 전수해 주길 요청하였고, 이것이 대조선통교의 주요 목적이 되었다.

 유구가 대장경을 求請한 것은 세조대부터이다. 세조 원년(1455) 8월 유구국사 道安이 대장경을 요청한 이래 연산군 6년(1500) 11월 유구국왕사 梁廣, 梁椿에 이르기까지의 유구사신들은 대부분 대장경의 하사를 요청하였다.≪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총 9회에 이른다. 이 중 대장경의 사급이 허락된 것이 6회이고, 한 번은 다른 불경으로 대체해 지급하였다. 대장경 구청이 활발했던 이 시기의 상당수 사절들이 博多상인이나 대마도인 등에 의한 위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유구인들도 조선에 대장경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조선으로부터 받은 대장경 및 불전은 유구의 주요사찰에 모셔졌으며, 불교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 때 받은 조선의 범종은 국보로서 首里의 波上宮에 보관되어 있으며, 浦添의 國芬寺와 수리에서도 ‘高麗瓦匠’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한다.732)東恩納寬惇, 앞의 책, 71쪽. 이 밖에 유구사신들은 대장경이나 불전 이외의 서적에 대해서도 그 정교함에 감탄하면서 ‘만세자손의 이익이 될 것’이라며 받아갔다.733)≪世祖實錄≫권 27, 세조 8년 2월 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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