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동남아국가와의 통교 가운데 문화나 기술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동남아국가로부터 물자 이외에 문화적인 것이나 기술이 조선으로 전래되었다는 기사는 없다. 단지 왜구방지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강남·유구·남만·일본 등의 배는 모두 쇠못을 사용하여 만드는데 견고하면서도 경쾌하고, 몇 달을 바다에 떠있어도 새지 않으며 태풍에도 훼상당하지 않고 20∼30년 견딘다”758)≪世宗實錄≫권 48, 세종 12년 5월 무오.는 기사가 있어 그들의 선박 제조기술이 조선의 이목을 끌었다는 정도이다. 한편 조선에서 동남아국가로 전수한 바도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구변국에서 조선에 대해 불교의 선진국으로서 칭송하면서 대장경의 증여를 요청하고 있는 정도인데, 조선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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