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Ⅳ. 군사조직
  • 3.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 2) 진관의 편제와 유방

2) 진관의 편제와 유방

 진관체제가 성립된 것은 전기한 바와 같이 세조 3년으로 그 뒤에도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경국대전≫에 법적으로 규정하여 조선 초기 지방군제의 골격을 이룬다. 세조 12년에는 각 도와 각 진관의 병마책임자의 명칭이 바뀌었으나 각 관의 수령이 절제사 이하를 겸임하는 원칙은 그대로 지켜졌다. 당시 개칭된 병마책임자들의 명칭을 보면 다음과 같다.292)≪世祖實錄≫권 38, 세조 12년 정월 무오.

都節制使→節度使, 都節制使鎭撫→虞候, 團鍊使→僉節制使,

團練副使→同僉節制使, 團鍊判官→節制都尉

 따라서 각도에는 兵馬節度使(=兵使)가 있어 도내의 陸守軍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는 主鎭이 있고 그 아래에는 牧使(정3) 등이 예겸하는 경우가 많은 첨절제사(府尹은 節制使)가 거진을 단위로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말단 제진은 군수(종4) 이하가 동첨절제사 이하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

 병마절도사는 경기·강원도의 경우 單兵使이기 때문에 관찰사(종2)가 예겸했지만 충청·전라·평안도의 경우는 전임병사 이외에 관찰사가 겸하는 겸병사가 또 있었으며 경상·평안도의 경우는 국방상 중요성에 비추어 관찰사가 예겸하는 겸병사 이외에 전임병사가 각각 2인씩 있었다. 관찰사는 한 도의 행정책임자로서 군사관계 행정을 관장한다는 뜻에서 병사를 겸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군사 지휘관계는 주진의 각도 절도사(경상좌·우도, 함길은 남·북도)로부터 거진의 첨절제사로, 또 그로부터 제진의 동첨절제사로 연결되는 일원적 계통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행정권을 專掌하는 관찰사는 여러 진의 병마관을 겸하는 수령들의 직속 상관이었기 때문에 군사면에서도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수군도 육수군의 진관편성에 좇아 진관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세종실록지리지≫에도 각 도의 수군은 2명의 僉節制使 또는 都萬戶 등의 지휘 아래 각 浦에 만호가 딸리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경국대전≫에 보이는 수군의 진관조직은 새로운 변화가 아니었다.

 각 도의 수군 최고지휘관은 水軍節度使(=水使, 정3)였는데 강원도·황해 도·평안도 및 영안도에는 육수군과 마찬가지로 관찰사나 병사가 겸하는 1인으로부터 3인의 수군절도사가 있었으며 경기, 충청도에는 1인의 전임수사와 관찰사가 겸임하는 1인의 兼水使가 있었고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각각 2인의 전임수사와 1인의 겸수사가 있었다.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漢城府 서문외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廣州진관)
광주목사
驪州·利川목사, 楊根군수 광주·여주판관·砥平·陰竹·陽智·
竹山·果川 등 현감
(水原진관)
수원부사
富平·南陽·仁川부사,
安山·安城군수
수원판관·振威·陽川·龍仁·衿川
현령, 陽城·通津현감
(楊州진관)
양주목사
坡州목사·高陽군수 永平·抱川·積城·交河·加平현감
(長湍진관)
장단부사
江華부사·豊德·朔寧·麻田
군수
漣川·喬桐현감
수 사 수영=南陽·花梁灣
  (첨절제사) (만 호)
(月串진관)
월곶(강화)첨사
永宗浦(인천)·草芝梁(강화)·濟物梁(강화)·井浦(교동)·
喬桐梁(교동)만호(=교동현감겸임)

<표 3>鎭管 편성표
京畿道:병사 1(관찰사) 수사 2(관찰사·경기수사)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尙州
  좌병사·우후 병영=海美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충주진관)
충주목사
淸風·丹陽·槐山군수 충주판관, 延豊·陰城·永春·堤川
현감
(淸州진관)
청주목사
天安·沃川·군수 청주판관, 稷山·木川·文義·懹仁·
천안·鎭川·報恩·永同·黃澗·靑山
현감
(公州진관)
공주목사
林川·韓山군수 공주판관, 全義·安山·恩津·懹德·
鎭岺·連山·尼山·扶餘·石城·燕岐
현감
(洪州진관)
홍주목사
西天·瑞山·泰安·溫陽군수 홍주판관, 平澤·鴻山·德山·靑陽·
大興·庛仁, 結城·藍浦·保寧·牙山
·新昌·禮山·海美·唐津현감
수사·우후 수영=保寧
  (첨절제사) (만 호)
(所斤浦진관)
소근포(泰安)첨사
唐津浦(당진)·波知島(서산)만호
(馬梁진관)
마량(庇仁차)첨사
舒川浦(만호)

忠淸道:병사 2(관찰사·충청병사) 수사 2(관찰사 충청수사)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尙州
  좌병사·우후 좌병영=蔚山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慶州진관)
경주부윤
(병마절제사)
울산·梁山·永川·興海
군수
경주판관·淸河·迎日·長鬐·機張·東萊·
彦陽현감
(安東진관)
안동대도호부사
寧海·靑松 부사, 醴泉·
永川·豊基군수
안동판관, 義城·盈德 현령, 奉化·
眞寶·軍威·比安·禮安·龍宮현감
(大邱진관)
대구부사
密陽부사, 淸道군수 慶山현령, 河陽·仁同·玄風·義興·新寧
·靈山·昌寧 현감
우병사·우후 우병영=昌原
  (상주진관)
상주목사
星州목사, 善山부사,
金山군수
상주·성주판관, 開寧·知禮·高靈·聞慶
·咸昌현감
(晋州진관)
진주목사
陜川·草溪·咸陽·昆陽
군수
진주판관, 南海현령, 居昌·泗川·三嘉·
宜寧·河東·山陰·安陰·丹城현감
(金海진관)
김해부사
창원부사·咸安군수 巨濟·固城현령, 漆原·鎭海·熊川현감
좌수사·우후 수영=東萊
  (첨절제사) (만 호)
(釜山진관)
부산포(동래)첨사
(京 職 겸)
豆毛浦(동래)·甘浦(경주)·海雲浦(동래)·漆浦(흥해)·包伊浦(동
래)·烏浦(영덕)·西生浦(울산)·多大浦(동래)·鹽浦(울산)·丑山
浦(영해)만호
우수사·우후 수영:巨濟·加背梁
  (첨절제사) (만 호)
(薺浦진관)
제포(熊川)첨사
(경 직 겸)
玉浦(거제)·平山浦(남해)·知世浦(거제)·永登浦(거제)·蛇梁(고
성)·唐浦(고성)·助羅浦(거제)·赤梁(진주)·安骨浦(웅천)만호

慶尙道:병사 3(관찰사·좌병사·우병사 3(관찰사 좌수사·우수사)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海州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黃州진관)
황주목사
平山·瑞興부사, 鳳山·安
岳·載寧·遂安·谷山 信川
군수
황주판관, 新溪·牛峯·文化현령·兎山·
長連현감
(해주진관)
해주목사
延安·豊川부사, 白川군수 해주판관, 甕津현령, 松禾·殷栗·江
陰·康翎·長淵현감
(첨절제사) (만 호)
(所江진관)
소강(옹진)첨사
廣岩梁(은율)·阿郞浦(장연)·吾叉浦(장연)·許沙浦(풍천)·芾乙浦
(강령)·龍媒梁(해주)

黃海道:병사 1(관찰사) 수사 1(관찰사)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海州
  병사·우후 병영=康津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全州진관)
전주부윤
(병마절제사)
益山·金堤·古阜·錦山·
珍山·礪山군수
전주판관, 井邑·興德·扶安·沃溝·
龍安·咸悅·高山·泰仁현감, 萬頃·
臨陂·金溝현령
(羅州진관)
나주목사
光州목사·靈岩·靈光군수 나주·광주판관, 함평·高敞·長城·
珍原·茂長·南平·務安현감
(南原진관)
남원부사
潭陽부사·淳昌군수 남원판관, 任實, 茂朱·谷城·鎭安·
玉果·長水현감, 龍潭·昌平현령
(長興진관) 珍島군수 강진·해남현감
(順天진관)
순천부사
樂安·寶城군수 光陽·求禮·興陽·同福·和順현감,
綾城현령
좌수사·우후 좌수영=순천梧桐津(현 麗水)
  (첨절제사) (만 호)
(蛇渡진관)
사도(興陽)첨사
會寧浦(장흥)·達梁(영암)·呂陽(흥양)·馬島(강진)·鹿島(흥양)·
鉢浦(흥양)·突山島(순천)만호
우수사·우후 우수영=海南
  (臨緇島진관)
임치도(咸平)첨사
黔毛浦(扶安)·法聖浦(영광)·多慶浦(영광)·木浦(무안)·於蘭浦
(영암)·群山浦(沃溝)·南桃島(진도)·金甲島(진도)만호
兵馬·水軍
( )
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濟州진관)
제주목사
―――― 제주판관, 大靜·旌義현감

全羅道:병사 2(관찰사·병사) 수사 3(관찰사·좌수사·우수사)

관 찰 사 (병사·수사겸)  감영=原州
  (첨절제사) (동첨절제사) (절제도위)
(江陵진관)
강릉대도호부사
三陟·襄陽부사, 平海·杆城·
高城·通川 군수
강릉판관, 蔚珍·歙谷현령
(원주진관)
원주목사
春川부사, 旌善·寧越·平昌
군수
원주판관, 麟蹄·橫城·洪川현감
(淮陽진관)
회양부사
鐵原부사 楊口·狼川·伊川·平康·金化·安峽현
감, 金城현령
(첨절제사) (만 호) 
(삼척진관)
삼척포첨사
安仁浦(강릉)·高城浦(고성)·蔚珍浦(울진)·越松浦(강릉) 만호

江原道:병사 1(관찰사) 수사 1(관찰사)

관 찰 사 (병사·수사·영흥부윤겸)  감영=海州
    (동첨절제사·만호) (절제도위)
(영흥진관)
영흥부윤
定平부사, 咸興·高原군수 영흥판관
남 병 사 (수사·북청부사겸)  병영=北靑
  (첨절제사) (동첨절제사·만호) (절제도위)
(북청진관)
북청부사
端川군수 북청판관, 利城·洪原현감
(安邊진관)
안변대도호부사
德原부사·文川군수  
(甲山진관)
갑산부사
雲寵(갑산)만호  
(三水진관)
삼수군수
   
(惠山진관)
혜산(갑산)첨사
   
(첨절제사) (만 호)
  浪城浦(안변)·道安浦(정평)만호
북병사·우후·평사 (수사·경성부사겸)  병영=鏡城
  (첨절제사) (동첨절제사·만호) (절제도위)
(경성진관)
경성부사
西北(吉州)·斜个洞(明川)·斜
下北(길주)·朱乙溫(경성)·魚
游澗(경성)만호
경성판관, 吉城·明川현감
(慶源진관)
경원부사
阿山(경원)·阿吾東(경흥)
만호
경원판관
(會寧진관)
회령부사
豊山(회령)만호 회령판관
(鐘城진관)
종성부사
防垣(종성)만호 종성판관
(穩城진관)
온성부사
永建(온성)만호 온성판관
(慶興진관)
경흥부사
撫夷(경흥)만호  
(富寧진관)
부령부사
茂山(?)·玉連(?)만호  
(訓戎진관)
훈융(경원)첨사
   
(潼關진관)
동관(종성)첨사
   
(高嶺진관)
고령(회령)첨사
   
(柔遠진관)
유원(온성)부사
   
(美錢진관)
미전(온성)부사
   
(첨절제사)    
    (만 호)
  造山浦(경흥)만호

永安道:병사 3(관찰사·남병사·북병사) 3(관찰사·남수사·북수사)

관 찰 사 (병사·수사·평양부윤겸)  감영=平壤
    (동첨절제사·만호) (절제도위)
(평양진관)
평양부윤
평양서윤·中和군수 평양 판관, 龍岡·三和·咸從·
甑山·順安·江西현령
병사·우후·평사 (수사·영변대도호부사겸)  병영=寧邊
  (永邊진관)
영변대도부사
雲山·熙川·博川군수 영변판관, 泰川현감
(安州진관)
안주목사
안주·肅川목사·嘉山군수 안주판관, 永柔현령
(成川진관)
성천목사
德川·价川·慈山·順川·祥原
군수
陽德·孟山·江東·殷山현감,
三登현령
(義州진관)
의주목사
鐵山·龍川군수 의주판관
(江界진관)
강계목사
楸坡(강계)·上土(강계)
만호
강계판관
(龜城진관)
구성부사
宣川·郭山군수  
(朔州진관)
삭주목사
仇寧(삭주)만호  
(昌城진관)
창성목사
   
(碧潼진관)
벽동군수
阿耳(理山)만호  
(渭原진관)
위원군수
   
(寧遠진관)
영원군수
   
(滿浦진관)
만포(강계)첨사
   
(麟山진관)
인산(의주)첨사
   
(方山진관)
방산(의주)첨사
   
(昌州진관)
창주(昌城)첨사
   
(高山진관)
고산리(강계)첨사
   
(첨절제사) (만 호)
  (宣沙浦진관)
선사포(鐵山)첨사
 
(老江진관)
노강(안주)첨사
 
(廣梁진관)
광량(三和)첨사
 

平安道:병사 2(관찰사·평안병사) 수사 2(관찰사·평안수사)

 육수군과 수군의 진관체제의 편성 내용은 위의<표 3>과 같다.293) 이 표는 李相佰,≪韓國史-近世前期篇-≫(震檀學會, 1962)에서 옮김. 진관체제가 전국을 하나의 군사조직의 체제 안에 편입되도록 했으나 모든 지역에 무장한 군사를 상주시킬 수는 없었다. 따라서 전국 각지에 거주하고 있던 軍丁들은 평시에는 중앙에 번상하거나 특수 국방지대에 부방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전지역에는 해당 진관에 소속되는 각종 군사가 비번인 채로 자기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실제로는 잠재적인 군사력을 이루고 있었다.

  留防 4旅 留防 3旅 留防 2旅 留防 1旅 합 계
忠 淸 道   주 진 庇仁·藍浦
泰安
  9旅(1,125명)
慶 尙 道 주 진 東萊·熊川 寧海·金海
泗川·迎日
南海·巨濟 24旅(3,000명)
全 羅 道   주 진 沃溝·茂長
扶安·順天
興陽·珍島 13旅(1,625명)
黃 海 道     康翎·長淵 黃州·遂安
豊川·甕津
8旅(1,625명)
江 原 道       江陵·三陟 2旅 (250명)
開 城 府 正兵留本府 巡綽
平 安 道 兩界甲士·正兵 留防本邑
永 安 道

<표 4>전국 留防 일람표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전략상 혹은 국방상 중요한 특수지대가 법전 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항상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것이 유방군으로 그 편성 내용은 위의<표 4>와 같다.294)≪經國大典≫권 4, 兵典 留防.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북방의 양도와 개성부를 제외한 전국 각 도의 국방상 요해지역에는 1旅로부터 4旅의 군사가 상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지역은 대체로≪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나는 영진과 거의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지역에는 각도의 정병 가운데 유방을 주임무로 하는 유방 정병이 교대로 복무하였다. 영진군의 후신인 이들은 번상 정병보다 약간 뒤지 는 존재였지만 1保를 지급받는 양인군사였다.

 한편 개성부의 경우는 관내의 정병이 巡綽을 통해 주로 치안 유지에 종사했으며 양계는 정병뿐만 아니라 감사도 양계 참사라 하여 모두 거주지에 유방하였다. 이는 이곳이 곧 국경지대의 요해지였으므로 자기가 거주하는 곳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진관체제에 의해 전국의 국방체제는 제도상으로 일원화되고 또한 유사시에는 각 진관을 중심으로 自戰自守하는 등 제도상으로는 일원화되었지만 내용상의 차이는 유방과 번상의 실제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雜色軍의 편제도 제도상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사실상의 국방태세를 반영하는 것은 바로 유방군의 배치였던 것이다.295) 閔賢九, 앞의 책,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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